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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사구의 재발견] ① 제주 김녕사구, 국내 최대 사구에서 소형 사구로

기사입력 2025-06-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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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 해안사구는 바닷가와 그 주변 육상에 있는 모래 언덕 등 모래땅입니다. 해안사구는 해수욕장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모래 저장고이며, 거센 파도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기후 위기를 막아 줄 '블루카본'의 저장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열풍 속에 제주를 비롯한 국내 많은 사구가 옛 모습과 기능을 잃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제주의 해안사구를 중심으로 그간 크게 쓰임이 없는 모래땅으로만 여겨진 해안사구의 가치를 소개하고, 보전 방안을 찾아보는 기사를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운영하는 '제주도 공간포털'에는 1967년 하늘에서 본 제주시 구좌읍 일대의 항공사진이 실려있다.

이 항공사진에는 왼쪽의 김녕해수욕장(아래 사진 붉은 원)에서 시작해 내륙 쪽으로 백사장(해빈) 모래가 쌓여 형성된 하얀 사선 지대들이 뚜렷하다.

하지만 이 모습은 2025년 현재 구좌읍을 담은 항공사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제주도의 북동쪽에 자리잡은 제주시 구좌읍에는 바다에서 강한 북서풍이 육상으로 불어오는데, 이때 백사장 모래도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진다. 이렇게 오랜 세월 많은 모래가 육상에 쌓여 만들어진 모래땅을 해안사구라고 부른다.

◇ '모살비'가 만든 초대형 사구

구좌읍 김녕리 지역 해안사구인 김녕사구는 김녕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빌레(넓고 평평한 용암 바위 지대를 말하는 제주어) 위에 차곡차곡 쌓여 형성됐다.

바람이 센 제주의 특성상 김녕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부는 바람에 모래가 날아와 곤욕스럽다. 김녕리 등 구좌읍 주민들은 이리저리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모래 비가 내리는 것 같다'며 제주어로 '모살(모래)비'라고 불렀다.

구좌읍 주민 강모씨는 "김녕부터 한동리까지는 모살비가 강해 농사를 짓다가 야외에서 밥을 먹을 때면 밥 위에 모살이 수북하게 쌓였다"며 "요즘도 바람이 거셀 때면 모래가 많이 날린다"고 말했다.

강한 제주 바람은 초대형 해안사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김녕사구는 적어도 농경지가 본격 조성되기 이전인 1970년대 말까지는 국내 190여개 안팎의 사구 중 가장 면적이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생태원은 1970년대 말까지 제주 김녕 사구 넓이가 3.98㎢로 국내 해안사구 중 가장 넓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과거 김녕 해안사구는 최대 길이가 5㎞ 내외이고 가장 큰 폭은 700m가 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김녕해수욕장 주변부터 해안을 따라 사구가 보존돼 남아 있고 그 위 모래땅에는 다양한 염생식물이 자라고 물떼새 등이 둥지를 틀었다.

구좌체육공원 동쪽 인근에는 솥의 죽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의 모습 같은 모래 언덕들이 봉긋봉긋 형성돼 있다. 이 구간을 따라 제주올레 20코스가 나 있어 올레 탐방객들이 사구에서 해안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구좌 해안도로에서 육상 쪽 농경지 지대에서도 군데군데 모래 언덕을 만날 수 있다.

김녕사구의 모래는 주변 용천동굴 내부로도 흘러들어 석회생성물을 만들어 내 현재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용천동굴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빚어냈다.

그런데 해안도로가 이 곳을 가로지르며 조성되면서 바닷가 쪽 사구와 해안도로 남쪽의 육상 사구의 자연적인 연결성이 끊겼다.

이들 사구가 모래 지대로 연결됐더라면 김녕해수욕장으로 모래가 자연적으로 흘러들어 공급돼 해마다 파도와 바람 등에 쓸려 김녕해수욕장 모래가 유실되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또 체육공원, 풍력발전기 등이 대규모 시설이 해안도로 남쪽 사구에 들어서 사구의 면적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은 "해안도로 때문에 사구의 연결성이 끊기면서 사구 모래의 자연 이동이 끊겼다"며 "해변의 모래는 점차 줄어들고 강한 파도를 모래가 막지 못해 해변의 침식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사구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없어 쓸모없는 땅인 것처럼 취급돼 개발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김녕사구는 과거 전국 최대 면적을 자랑했지만, 시간이 흐른 현재는 소형 사구로 전락한 상태다.

국립생태원의 2020년 조사에서 해빈을 포함해 최대 길이 690m, 최대 폭 240m, 면적은 약 0.09㎢로 1970년대 말 3.98㎢에 비해 면적이 97.7%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김녕사구에 이어 2위였던 태안 신두리 사구(현재 면적 3.71㎢)에 1위를 내줬다.

사구 지역이 쉽게 개발돼 각종 시설이 들어서면서 면적이 축소된 데다, 환경부가 김녕사구 중 사구 후면부인 '배후사구' 전체를 사구에서 제외하면서 과거보다 면적이 대폭 축소됐다.

환경부는 김녕사구의 배후사구 상당 지역이 현재 농경지로 개간돼 소멸했다고 판단해 이 배후지역을 빼고 해안 쪽만 사구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는 김녕사구의 배후사구 전체가 소멸했다기보다는 농경지 주변에 섬처럼 드문드문 사구가 남아 있고 농경지로 활용하는 경우 특수성을 인정해 배후사구 일부를 사구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 "현재 농경지 주변 등에 섬처럼 남은 배후지구 또한 환경부가 해안사구로 인정해 조사 대상에 포함하는 등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모래언덕' 해안사구

구좌읍 지역에는 김녕해수욕장에서 해안선을 따라 동쪽 방향으로 구좌읍 월정모살길 주변 및 월정해수욕장, 행원리 코난해변 지점 등에서도 육상 방면으로 해안사구가 있다.

백사장이 있는 곳이라면, 그 백사장 지점부터 육상 쪽으로 바람의 영향으로 해안사구가 자연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해안사구는 해빈이라고 부르는 백사장과 더불어 모래 지대를 이루는 지형 중 하나다. 바닷물에 잠기기도 하는 부분이 조간대와 해빈이며 그보다 육지 쪽을 해안사구의 시작점으로 본다.

바람에 날린 모래들은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지질 지대에 퍼지는데, 모래가 넓게 쌓이거나 곳곳에 켜켜이 쌓여 모래 언덕을 이루기도 한다.

해안사구는 그 형성 과정이 백사장과 직결된 만큼 전체 백사장 등 해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태풍이나 해일 등으로 백사장의 모래가 없어지면 다시 이를 채워주는 모래 저장고 역할을 한다. 해안사구가 없다면 유실되는 백사장 모래를 다시 채울 수 없게 된다. 유명 해수욕장 백사장 모래가 점점 사라져 인위적으로 모래를 채우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해안사구는 또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도 에너지를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천연 방파제로서 인간의 거주 지역과 농경지를 보호해 준다. 해안사구가 있어야 육지의 침식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해안사구는 최근에는 탄소 흡수량이 많은 염생식물이 자라는 '블루카본' 지대로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제주의 해안사구는 화산섬 지질 위에 형성돼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용암동굴에도 영향을 미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등 가치가 높다.

(이 기사는 제주환경공익기금위원회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koss@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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