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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사초 실종 논란' 사건도 있었다. 18대 대선을 두 달 앞둔 2012년 10월 당시 정문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록'을 거론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정쟁이 시작됐다. 회의록 유출 논란으로 시작된 정쟁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열람하도록 국회가 결정했음에도 회의록 원본을 찾을 수가 없어 '사초 실종' 논란으로 번졌다. 결국 검찰 수사에 이은 오랜 법적 다툼까지 벌어졌으나 종국에는 관련된 이들이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다.
'내란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에 지명된 조은석 전 감사위원이 "사초를 쓰는 자세로 세심하게 살펴 가며 오로지 수사 논리에 따라 직을 수행하겠다"는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가 어떤 의미에서 '사초를 쓰는 자세'라는 각오를 밝혔는지 궁금하다. 후세가 교훈으로 삼을 역사의 기초자료를 제대로 남겨야 하는 엄중한 사명 의식과 책임감의 표현으로 봐야 하나. 한편에선 이런 각오가 즉각적인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성명에서 "조 전 위원 그 자신이 용산 참사 편파수사의 사초"라며 특검 지명 취소를 요구했다. 조 전 위원이 검사 시절 2009년 용산 참사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총괄 지휘하며 편파·부실 수사를 했다는 주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조 특검이 일선 검사 시절 '독하게' 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수사 능력에서는 적격이라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힘에선 감사위원으로 있으면서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이유로 편향적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조 특검은 야당이 주장하는 '정치보복' 논란을 불식시키고 누구나 신뢰할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옛날 사관들은 자신의 기록이 권력의 칼날이 돼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오직 역사의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에서 붓을 들었을 것이다. 이런 자세로만 수사한다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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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