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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라크전 트라우마'

기사입력 2025-06-19 16:47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2003년 3월 미군과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국제평화를 위협한다는 전쟁 명분을 내세우면서다. 미국은 WMD 관련 정보와 증거들이 명확하다고 자신했다. 전쟁 시작 후 곧바로 후세인 정권은 붕괴했지만 WMD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라크 내 혼란이 커져 여러 무장단체와 테러집단의 힘을 불리는 결과만 낳았다. 이라크 침공은 정당성을 잃었고,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이라크전은 '상처만 남은 실패한 전쟁'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이라크전은 정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전쟁이 WMD 존재에 대한 정보로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정보 자체가 허위와 조작, 과장된 주장에 기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BBC는 전쟁 10년 후 2013년 탐사 다큐멘터리에서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이 암호명 '커브볼'로 불린 망명자 등 2명의 이라크 출신에게 농락당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허위 진술을 토대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양국 정보당국은 후세인 정권의 WMD 보유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정보도 입수했지만, 이런 정보는 폐기됐고 이용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당시 부시 미 행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보를 왜곡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낳은 '이라크 트라우마'가 20여년만에 소환됐다. 이란 핵시설 등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으로 시작된 양국의 전쟁에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자 트럼프 지지층에서도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이끌려 또 하나의 중동 전쟁에 말려들어 가고 있다"는 비판의 말이 나온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까지만 해도 "지난 반세기 동안 이라크와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정권교체와 각종 재앙에 미국의 피와 돈을 쏟아부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랬던 트럼프가 이란에 "무조건 항복하라"고 요구하면서 다양한 군사적 옵션을 검토하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정보 왜곡의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의도와 배치되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이란의 핵무기 제조가 임박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스라엘이 공습에 나서기 전 미국 측에도 알렸으나 미 정보당국은 이를 이란이 핵무기 제조를 결정했다는 증거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털시 개버드 국장은 지난 3월 상원 정보위에서 "정보당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보기관들의 평가를 일축하면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2003년 부시 전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을 상기시킬만한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핵 문제로 시작된 이번 전쟁에 어떤 식으로 개입하든 그 결정은 미국의 이익에 따른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도 핵 협상을 곧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촉발된 제1차 북핵 위기(1993∼1994년) 때 미국은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영변 북핵 시설 폭격 등 군사 옵션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외교적 협상을 병행해 결국 제네바 북미 합의를 이뤄냈다. 트럼프도 이란도, 이란 지하 핵시설에 미군의 벙커버스터가 투하되는 일 없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 바란다.

bondo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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