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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가속 문제…"초반 토크 제한·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논의해야"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청역 역주행 참사' 꼭 1년 만에 다시 벌어진 '상암동 전기차 돌진 사고' 현장은 당시의 참혹함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사고 약 4시간 만인 1일 오후 8시께 찾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 공원 앞 도로에는 산산조각 난 자동차 파편들이 인도와 차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피해자가 있던 인도에는 철제 방호울타리(가드레일)가 있었지만, 차를 막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뽑혔다. 차가 돌진한 구간 바로 옆의 울타리도 충격에 휘어버렸고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띠가 사라진 울타리를 대신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또다시 자동차 돌진 사고로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며 불안해했다. 이 공원을 자주 산책한다는 김유근(53)씨는 "시청역 참사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름 대책을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차량 돌진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여전한 것 아니냐"며 "인도를 걸어 다닐 수도, 마음 편히 벤치에 앉아서 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몸서리를 쳤다.
마포구에 따르면 사고 현장 방호울타리는 지난해 11월께 설치됐는데, 돌진하는 차량의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
보행자용 방호울타리는 도보와 도로를 구분하고 보행자의 무단 횡단을 막기 위한 것으로 차량의 충격을 막는 목적이 아니다. 이곳에 설치된 울타리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시청역 참사 이후 8t 차가 시속 55㎞ 속도로 충돌해도 막을 수 있는 'SB1' 등급 차량용 방호울타리를 시내 101곳에 설치하고 있다.
급경사·급커브 등 도로 여건상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보행취약구간 101곳이 설치 대상인데, 이번 사고 발생지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마포구에선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홍대, 동교동 삼거리 등이 설치 대상지로 선정된 상태다.
시 관계자는 "101개소에 설치를 해보고 추가로 필요하다면 (대상지를) 발굴해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조치로는 운전자 실수에 따른 인도 돌진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지적도 있다.
이번 사고는 전날 오후 4시 2분께 맞은편 건물 주차장에서 나온 전기차가 급작스럽게 인도로 달려들며 발생했다. 목격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 차는 우회전해 도로로 빠져나가야 했으나 정면으로 직진해 공원 앞 벤치에 앉아있던 40대 남성을 친 뒤 깔아뭉갰다. 남성은 심정지 상태로 인근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운전자 50대 여성 A씨는 사고 직후 페달을 잘못 조작한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는데, 경찰은 전기차의 '원 페달(One-Pedal) 드라이빙'이 원인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속 페달로 가속과 감속(회생제동)을 하다가 정작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가속 페달을 밟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의 강력한 초반 토크를 고려하면 마치 급발진하듯 피해자를 향해 달려가며 피해를 키웠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예상보다 좋은 발진력에 돌진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정부와 차량 제작사가 초반 토크 제어·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의 도입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away77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