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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세법 개정안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부동산 관련 세제가 올해 세제 개편안에서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서울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부동산 세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강도 높은 6·27 대출 규제가 발표된 만큼 시장 상황을 봐가며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 방안이다.
◇ 세제 개편에 빠지는 부동산 세제…공시가격 카드 쓰나
지난해 7월 세법 개정안의 화두는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폐지 또는 감면 여부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 이어 지난해 4월 총선 후에도 1주택자 종부세 감면 또는 폐지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도 1주택자 종부세 폐지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실제 법제화 가능성에 힘이 실렸으나 결국 집값 상승과 부자 감세 논란을 우려해 세제 개편안에 포함되진 않았다.
이후 집값이 크게 뛰고 정권이 바뀌면서 올해 부동산 세제의 관심은 지난해와 반대 상황이 됐다.
'똘똘한 한 채' 쏠림 현상으로 강남 등 인기 지역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보유세를 올리고, 다주택자의 과세 기준을 '주택 수'에서 '주택 가액'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일단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에 부동산 세제는 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 대선으로 복잡한 부동산 세제를 건드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기간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6·27 대출 규제의 효과를 봐가며 방향을 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굳이 복잡한 세법 개정없이 여차하면 보유세를 올릴 카드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와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까지 올리는 로드맵을 만들고, 단기간에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 시세-공시가격의 '역전현상'을 초래하고, 1주택 중산층에까지 과도한 보유세를 부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보유세를 공시가격 로드맵 도입 전 수준으로 돌리기로 하고, 2023년부터 2020년 현실화율인 평균 69%(공동주택 기준)를 적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시가격의 문제로 지적된 균형성 제고에 주력하면서 기존 현실화율 로드맵은 폐기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로드맵을 만든 이재명 정부가 다시 집권하면서 폐기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오히려 시장에선 공시가격 현실화율 향배에 따라 보유세가 크게 인상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초 로드맵상 2026년도 공동주택 현실화율은 평균 80.9%로, 올해 현실화보다 11.9%포인트 높다. 이중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은 이미 올해 현실화율이 목표치인 90%까지 도달했어야 한다.
여기에 공정시장가액 비율 조정은 내년 보유세를 좌우할 또 다른 변수다.
윤 정부는 최고 95%까지 높였던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23년부터 60%로 낮췄고,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당초 60%에서 2023년부터 1주택자는 43∼45%로 특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시행령 개정 사항으로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원래대로 환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꺼내쓸 수 있는 카드다.
현재 새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에 대한 정책 방향은 공개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의 내년도 공시가격 조사 산정 업무가 올해 10월께부터 본격화하는 만큼 현실화율 적용 비율이나 공정시장가액비율 환원 여부는 그때 시장 상황을 봐가며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서울 등 일부 집값 급등 지역은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한 별다른 조처 없이도 보유세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값은 0.16% 하락한 반면, 서울은 평균 3.41% 올랐다.
특히 고가주택이 몰려 있는 서초구(8.68%)와 강남구(8.42%), 송파구(10.23%)는 상반기에만 아파트값이 8∼10%가량 오르고, 강북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도 상승률이 4∼5%대여서 보유세 인상 가능성이 크다.
◇ 현실화율·공정시장가액율 일부 상향에도 고가주택 보유세 한도까지 급증 전망…집값이 변수
실제 연합뉴스가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세무사)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과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올해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고가주택은 시세 상승분에 따라 올해보다 보유세가 20∼30% 이상 오르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서초구 반포 자이 전용면적 84㎡의 경우 최근 실거래가가 47억원 선으로, 현실화율 변동없이 공시가격이 올해 27억7천400만원에서 내년 33억4천300만원으로 20.5%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종합부동산세를 포함한 보유세는 올해 1천275만원에서 내년은 1천688만원으로 약 32% 증가한다.
만약 하반기에 집값이 떨어지면 보유세도 이보다 감소하지만, 현실화율을 높이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정부가 시장의 충격을 감안해 현실화율을 시세의 75%까지만 올리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은 현행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내년도 고가주택의 보유세는 30∼50%까지 오르는 단지가 많아진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의 현 시세가 41억5천만원이라면 현실화율 75% 적용시 내년 공시가격 추정액은 약 31억1천250만원으로 올해 공시가(24억9천500만원) 대비 24.8%가 오르고, 보유세는 올해 1천46만원에서 내년 1천454만원으로 39% 상승한다.
만약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당초 로드맵상의 계획대로 시세 15억원 이상 아파트 기준 90%로 끌어올린다면 고가주택의 대다수가 세부담 상한선(50%)까지 보유세가 오를 전망이다.
올해 연말에 집값이 작년 말보다 하락한다고 가정해도 현실화율 제고 수준에 따라 일부 단지는 집값 하락보다 현실화율 상향에 따른 상승폭이 커져 공시가격이 오를 수 있다.
고가주택의 보유세 인상 효과는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으로 극대화할 수 있다.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 해도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70%로 높이면 강남 주요 단지의 보유세가 30%에서 최대 50%까지 오르며 현실화율 제고와 비슷한 인상 효과가 생긴다.
만약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75%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70%로 동시에 상향하면 강남의 고가주택의 다수가 세부담 상한까지 보유세가 급등할 것으로 예측된다.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84㎡는 내년 보유세가 1천843만원으로,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내년 보유세가 2천284만원으로 각각 올해(1천275만원, 1천572만원) 대비 세부담 상한(50%)까지 보유세가 늘어난다.
다만 종부세가 부과되지 않는 공시가격 12억원 이하(1주택자) 아파트는 올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만큼 현실화율 제고나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환원(60%)에 따라 보유세 부담이 좌우될 전망이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우병탁 위원은 "결국 내년도 보유세는 연말까지 집값 변동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공정시장가액비율의 다양한 퍼즐을 정부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인상폭이 결정될 것"이라며 "일단 대통령이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한 만큼 정권 초기부터 보유세를 과도하게 높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시가격은 보유세 산정 외에도 건강보험료·기초연금 등 67가지 행정목적에 이용되는 중요한 지표인 만큼 현실화율의 급격한 조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출 규제의 약발이 오래 가지 않고 집값이 다시 오르면 공시가격이나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폭이 커질 수 있어서다.
한 감정평가사는 "현실화율을 무리하게 높이면 시장의 충격이 크고 시세 역전현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공시가격은 적정 현실화율을 토대로 그간 문제로 지적돼온 균형성 제고에 주력하고, 보유세 인상이 필요한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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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