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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포항공대(POSTECH)에서 IT융합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4학년 학생이다.
22일 경북남부보훈지청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포항에 사는 6·25 참전용사 3명을 인터뷰한 뒤 자서전 파일을 만들었다.
조만간 책으로 만든 뒤 포항 연일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쓴 감사편지와 함께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공학도인 그가 왜 참전용사에 관심을 갖고 자서전까지 작성한 이유는 큰아버지 때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큰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군인의 꿈을 가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원래 꿈은 교사였고,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하기 위해 꿈을 접고 월남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지난해 추석에서야 처음 들었다.
큰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얘기를 한 뒤 "내가 살아있을 때 누가 이런 이야기를 좀 남겼으면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다.
김씨는 포항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고민하다가 고령자들이 손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대화를 나누면 자서전을 작성해주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공대생이라 글재주가 별로 없지만 AI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직접 글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지도교수인 박상돈 인공지능대학원 및 컴퓨터공학부 교수의 도움을 받아 AI를 활용해 '대화형 자동 자서전 작성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사부터 자서전 개요 설명, 질문과 추가 질문 등 인터뷰 대상자에게 다양한 얘기를 하고 답변을 얻은 뒤 확보한 정보를 구조화해서 자서전을 작성할 수 있다.
사람은 AI가 생성한 질문을 인터뷰 대상자에게 읽어주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자서전 작성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선해 나갔다.
프로그램 이름은 "사용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기록해 우리의 유산을 지킨다"란 영어의 약자를 딴 SONJU(손주) 프로젝트다.
손주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만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가장 먼저 큰아버지 얘기를 남기고 싶었지만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다른 유공자 얘기를 기록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경북남부보훈지청의 협조를 얻어 3명의 참전용사와 각각 1시간 인터뷰한 내용이 5쪽 분량의 자서전으로 탄생했다.
김씨는 "정보량이 적어서 생각보다 길지는 않다"며 "기존 구술 기록 방식과 비교해 손주 프로젝트는 이야기를 엮는 부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자서전을 작성해주기 때문에 고령층이 손쉽게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포항에 흐르는 형산강이 6·25 전쟁 때엔 피로 물들어 '혈산강'으로 불렸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8월에 졸업하는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AI 등을 더 연구하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UN 참전국 유공자들의 얘기도 남기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씨는 "이번 프로젝트는 전공 지식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며 "지금 내가 누리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란 점을 새삼 깨달았다"고 밝혔다.
sds123@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