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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남자들이 권력을 쥐게 된 건 농경사회로 넘어오면서부터다. 농경에는 근육과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인류는 한자리에 정착했고 그에 따라 일부일처제 가정도 착근했다. 힘센 남성 가장, 기술 전수, 질서 등이 필요해지자 가부장제가 뿌리내려 근현대에 이른다. 그런데 농경사회가 기술혁명 이후 산업사회로 변천했고, 신기술이 근육을 대체하면서 여성도 투표권을 갖는 등 여권이 급신장했다. 이제 여성은 생계나 치안 유지 등을 위해 남성과 짝이 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사실 혼인율 저하와 이혼율 증가는 기술 발달과 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자들은 예뻐지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화장을 일상화하는 남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남성 화장품 시장은 급성장 중이고, 그중에서도 한국 시장 성장률은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2010년대부터 인구 대비 화장품 사용 비율은 한국 남자들이 세계 1위를 찍은 지 오래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9년 1조 원 규모를 찍은 이래 꾸준히 파이를 키우고 있다.
남자들, 특히 MZ 남성들의 그루밍 열풍은 기초 화장품에서 그치지 않는다. 금기처럼 여겼던 색조 화장품 사용이 늘고 있고, 각종 시술과 기구에까지 관심을 확대 중이다. 지난 5월 만 20~59세 남성을 상대로 한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3년 전 같은 조사보다 BB크림과 파운데이션, 립밤 같은 색조 제품 사용률이 항목별로 많게는 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남성들이 다리털 제거기와 니플 밴드 같은 도구들을 구매하는 현상도 근래 두드러진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특히 이런 제품들은 남성들의 자발적 의지보다 대부분 여자친구나 아내의 권유로 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엔 남성 아이돌이 화장 문화를 유행시킨 특수성도 있다.
문화사회학 시각에선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 증가가 젠더리스(genderless. 성정체성 없음), 페미니즘 등을 포함한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 사상의 확산과도 관계있는 것으로 본다. 이제 생물학적 성 구별은 의미 없다는 관념이 의식구조에 뿌리내렸다는 주장이다. 마초 문화가 비교적 강한 미국 등 서구에서조차 남성 화장품 사용률이 급증하는 걸로 볼 때 이런 분석도 일리 있어 보인다. 민주당 세가 강한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에서 점점 화장실 성별 구분을 없애는 것이나,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사회 현상이 된 '초식남'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즘 동남아 못지않게 날이 너무 뜨겁다. 남성 색조 화장에 대해 사회 분위기가 관대해졌으니, 이젠 직장에서 남자들도 반바지나 치마 등을 입을 수 있게 복장 규정을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