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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나 예뻐요?"…화장하는 남자들

기사입력 2025-07-29 08:09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7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화장품 판매점에서 방문객들이 피부관리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들어 외모를 가꾸는 데 관심을 갖는 남성들이 증가하면서 국내 화장품업계가 남성 화장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며 수익 창출을 꾀하고 있다. 시장 조사 회사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연간 남성 스킨케어 소비액은 한국이 1인당 9.6달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2024.1.7 ryousant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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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인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예쁘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동물 중 하나다. 반대로 대부분 동물은 수컷이 태생적으로 암컷보다 훨씬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평소 '그루밍'(몸단장)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이는 짝짓기와 번식의 주도권이 암컷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DNA를 후세에 남겨야 하는 수컷으로선 최대한 눈에 띄는 매력적인 외모로 암컷의 시선을 끌어야 해서다.

진화생물학자, 인류학자 등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 역시 짝짓기 주도권이 수컷에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도 암컷이 더 많이 치장하는 건 이례적인 종 특성이다. 다만 이런 현상은 경제 주도권, 즉 권력적 요인이 강하며, 인류 전체 역사로 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한다. 원시부터 대부분 인류 시대는 사냥과 채집 경제 시기였는데, 그때까진 열매 채집과 육아 등 대부분 일을 도맡아 했던 여성들의 권력이 가끔 사냥에 성공하는 남성보다 강했기에 짝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었다. 그래서 여성이 치장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모계 사회가 오래 이어졌고 남성은 DNA를 여성에 전하는 과업을 완수하면 떠나기도 했다.

그랬던 남자들이 권력을 쥐게 된 건 농경사회로 넘어오면서부터다. 농경에는 근육과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인류는 한자리에 정착했고 그에 따라 일부일처제 가정도 착근했다. 힘센 남성 가장, 기술 전수, 질서 등이 필요해지자 가부장제가 뿌리내려 근현대에 이른다. 그런데 농경사회가 기술혁명 이후 산업사회로 변천했고, 신기술이 근육을 대체하면서 여성도 투표권을 갖는 등 여권이 급신장했다. 이제 여성은 생계나 치안 유지 등을 위해 남성과 짝이 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사실 혼인율 저하와 이혼율 증가는 기술 발달과 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자들은 예뻐지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화장을 일상화하는 남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남성 화장품 시장은 급성장 중이고, 그중에서도 한국 시장 성장률은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2010년대부터 인구 대비 화장품 사용 비율은 한국 남자들이 세계 1위를 찍은 지 오래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9년 1조 원 규모를 찍은 이래 꾸준히 파이를 키우고 있다.

여성 수요 확장에 한계를 느낀 업계에선 이를 '남성 그루밍 시장'으로 부르며 공략에 사활을 걸었다. 이제 화장품 업체에 남성 제품은 틈새 수요가 아닌 미래 생존을 위한 필수 공략 대상이다. 심지어 PX(군소매점)에 유명 브랜드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군인이 선택한 화장품'은 마케팅에 굉장히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생명과 평안한 일상을 지켜주는 '마초의 상징' 군인들이 시커먼 위장크림 대신 '옴므 올인원 솔루션'과 '쿨링 수분크림'에 열광하는 시대가 됐다.

남자들, 특히 MZ 남성들의 그루밍 열풍은 기초 화장품에서 그치지 않는다. 금기처럼 여겼던 색조 화장품 사용이 늘고 있고, 각종 시술과 기구에까지 관심을 확대 중이다. 지난 5월 만 20~59세 남성을 상대로 한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3년 전 같은 조사보다 BB크림과 파운데이션, 립밤 같은 색조 제품 사용률이 항목별로 많게는 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남성들이 다리털 제거기와 니플 밴드 같은 도구들을 구매하는 현상도 근래 두드러진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특히 이런 제품들은 남성들의 자발적 의지보다 대부분 여자친구나 아내의 권유로 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엔 남성 아이돌이 화장 문화를 유행시킨 특수성도 있다.

문화사회학 시각에선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 증가가 젠더리스(genderless. 성정체성 없음), 페미니즘 등을 포함한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 사상의 확산과도 관계있는 것으로 본다. 이제 생물학적 성 구별은 의미 없다는 관념이 의식구조에 뿌리내렸다는 주장이다. 마초 문화가 비교적 강한 미국 등 서구에서조차 남성 화장품 사용률이 급증하는 걸로 볼 때 이런 분석도 일리 있어 보인다. 민주당 세가 강한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에서 점점 화장실 성별 구분을 없애는 것이나,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사회 현상이 된 '초식남'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즘 동남아 못지않게 날이 너무 뜨겁다. 남성 색조 화장에 대해 사회 분위기가 관대해졌으니, 이젠 직장에서 남자들도 반바지나 치마 등을 입을 수 있게 복장 규정을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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