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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지나도 선명한 'PTSD'…국내 연구진, '공포 기억' 사라지지 않는 이유 찾아

기사입력 2025-07-29 14:14


시간 지나도 선명한 'PTSD'…국내 연구진, '공포 기억' 사라지지 않…
 ◇전전두엽 GABA 농도가 뇌혈류량을 통해 PTSD 증상 심각도에 미치는 영향 분석한 결과. 자료=IBS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전쟁, 사고, 성폭력, 자연재해 등)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 및 불안장애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희미해지는 일반적 공포와 달리 선명한 공포 기억이 계속된다.

이창준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은 류인균 이화여자대학교 뇌융합과학연구원 석좌교수 연구팀과 함께 공포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PTSD의 병리기전을 규명하고, 뇌 속 비신경세포인 별세포(Astrocyte)가 만드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mma-Aminobutyric Acid, GABA)를 새로운 치료 표적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의 생화학·분자생물학 분야 최고 권위지 '신호 전달 및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온라인 게재됐다.

연구팀은 현재 PTSD 치료제는 대부분 세로토닌 수용체를 조절하는 항우울제가 사용되지만, 효과를 보이는 환자는 20~30%에 그치고 치료 반응 속도도 매우 느리다는 점에서 새로운 PTSD 치료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진은 PTSD 환자, 외상 경험자, 일반인으로 구성된 380여 명의 대규모 뇌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PTSD 환자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고, 뇌혈류량이 감소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변화는 PTSD 증상의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증상이 회복된 환자는 가바 농도와 뇌혈류량이 모두 정상화됐다.

이창준 IBS 단장은 앞선 연구에서 뇌 속 별 모양의 비신경세포인 별세포가 마오비(Monoamine Oxidase B, MAOB)라는 효소를 통해 가바를 생성한다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임상 뇌영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PTSD에서 나타나는 전전두엽의 기능 저하가 별세포에 의한 가바의 과도한 축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밝혔다.

연구진이 PTSD 환자의 사후 전전두엽 뇌조직을 분석한 결과, 별세포에서 마오비의 활성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고 뇌조직 내 반응성 별세포(Reactive Astrocyte)가 확장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시에 가바 분해 효소(ABAT)의 발현이 감소하면서 가바가 과잉 생성·축적되는 병리적 변화가 나타났다.

이어 전전두엽의 기능 저하와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동물실험에서, 별세포의 마오비 활성을 증가시킨 PTSD 동물모델은 공포 반응이 장기간 지속되고 공포 기억을 감소시키는 뇌의 회복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마오비 활성을 억제해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자, 이러한 반응이 완화됐다. 이 결과는 별세포의 마오비 과활성에 따른 가바 축적이 PTSD에서 공포 기억이 지속되는 원인임을 입증한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이 마오비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신약 후보 물질 'KDS2010'을 PTSD 동물모델에 투여해 효과를 확인한 결과, 별세포의 가바 농도와 뇌혈류량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으며,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뇌 기능이 회복돼 불안 행동 증상이 완화됐다. 이창준 단장의 기초연구로부터 개발된 이 신약 후보물질은 안전성 검증을 마치고 현재는 임상 2상 시험 중에 있다.

이창준 IBS 단장은 "PTSD의 분자·세포 수준의 병리기전을 규명하고, 별세포라는 새로운 치료 표적을 제시해 PTSD의 근본적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라며, "별세포 조절을 통한 새로운 정신질환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류인균 이화여자대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임상에서 포착한 단서에서 출발해 동물모델에서 기전을 확인하고, 신약의 효과 검증까지 확장한 역중개연구(Reverse Translational Research)의 대표 사례"라며, "임상과 기초연구를 통합하는 접근으로 정신질환 치료 연구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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