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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인생은 장편소설"

기사입력 2025-08-09 08:41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TKC픽쳐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5 jin90@yna.co.kr

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 씨가 최근 황순원문학상 신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차 씨는 SNS에 올린 소감에서 "42세에 첫 소설을 출간했는데 58세에 신진작가상을 받는다. 인생은 끝까지 읽어봐야 결말을 아는 장편소설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소설 '잘가요 언덕'을 펴내며 작가로 데뷔한 후 '그들의 하루', '오늘예보' 등을 썼다. 특히 '잘가요 언덕' 개정판으로 출간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영국 옥스퍼드대 필수 도서에 오르기도 했다. 유명 배우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소설가로 인생의 새 페이지를 써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인생 결말이 궁금해진다.

차 씨가 언급한 대로 인생이 장편소설에 비유되는 건 우리의 삶이 그만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수많은 장면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복잡다단하게 전개된다. 처음부터 줄거리나 결말을 짐작하기 어렵다. 인생도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실패와 도전이 거듭되고, 새로운 기회들이 이어지며 그 속에서 사람들이 변하고 성장한다. 그래서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젊은 날 한순간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삶을 긴 여정으로 보라는 격려의 의미에서도 이 비유가 쓰인다.



얼마 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층(2030세대) 인구가 월평균 70만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인구는 작년 상반기보다 4만명 이상이나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쉬었음' 인구는 별다른 이유없이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쉰 사람을 말한다. 이 중 재취업을 못 해 경력 단절이 1년을 넘긴 청년도 30만명에 달했다. 무엇이 그들에게 구직조차 포기하게 했을까. 그들에게 '인생은 장편소설'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싶다.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고 도전을 무모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자원은 부족한데 인구밀도가 높아 치열한 생존 경쟁이 불가피한 사회다 보니 '실패=재도전 불능'이라는 공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자리 잡아서인지 모른다. 극심한 경쟁을 치른 기성세대들은 선뜻 자식들에게 과감한 도전에 나서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대체로 안전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성적 우수 학생들이 안정된 '기대 소득'이 보장되는 의대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지난달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2부작 '인재전쟁'은 한국과 중국의 이공계 인재 양성의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해 뜨거운 반응을 낳았다. 공학 천재가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받는 중국의 현실과 최상위 인재가 의대에 몰리는 한국의 '의대 만능주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이 다큐는 '인재들이 부(富)만 좇는 나라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공대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곳이고, 의대는 보상이 보장된 곳인데 그 갈림길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길을 선택하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다고 했다.

수십년간 형성돼온 사회 분위기를 한꺼번에 바꾸긴 어렵다. 젊은 날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나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사회를 꾸준히 만들어가야 한다. 많은 젊은이가 과감한 도전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최고의 시험 성적을 들고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도전과 선택이 현실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그들의 신념을 지켜줘야 한다. 그들이 제2의 '이해진' '김범수'가 될 수 있는 사회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고령층(55∼79세) 경제활동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인생은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청년층에만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사회에서 1차 은퇴하는 5060세대에게도 이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겠지만 아직 인생의 많은 페이지가 남아 있다. 장편소설의 2막을 이제 써 내려가야 한다. 소설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bondo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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