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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이다"

기사입력 2025-08-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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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배우 윤경호 씨가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아픈 가족사를 털어놨다. 그는 어머니가 과거 우울증을 앓았고 결국 30대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윤씨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사람들이 흉볼 수 있으니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해라"는 말을 듣고, 한 번도 어머니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윤씨의 고백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고 감사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SNS에 "사회의 낙인으로 인해 슬픔을 숨겨야만 했던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줄 거로 믿는다"며 "침묵이 아닌,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는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내주신 윤경호 배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윤씨가 어머니의 죽음을 말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고백이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고도 공개적으로 슬퍼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한다.



나 교수가 SNS에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의 자살은 최대 135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평균적으로 15~30명에게 매우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한 해에 1만4천여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는 한국에서는 1년에 약 40만명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 셈이다. 지난 2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산술적으로 최대 800만명 가까이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그동안 한국을 '거대한 자살 유가족 사회'라고 주장해왔는데 그가 밝힌 연구도 추정치를 통해 산정한 최대치를 말한 것 같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자살 유족은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을 자살로 잃고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을 말한다. 유족의 범위를 친인척 관계로 한정하지 않고 '친구나 동료, 이웃, 지인' 등 심리적으로 가깝게 지내며 친밀함을 유지했던 관계 중 자살로 인해 영향을 받은 경우도 포함할 수 있다고 한다. 통상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의 자살로 영향받는 사람을 최소 5명에서 10명으로 본다. 작년 우리나라의 자살(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4천439명으로 집계됐는데 WH0 기준을 적용하면 매년 7만여명∼14만여명의 자살 유족이 생기는 꼴이다.

한 사람의 자살은 친인척뿐 아니라 직장 동료나 친구 등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과 함께 매우 심각한 고통을 준다. 자살이 '사회적 재난'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자살 유족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으로 선뜻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숨기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중한 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은 유족들은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 매일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윤씨의 고백이 우리 사회의 자살 유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은 자살이 말할 수 있는 죽음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자살 유족도 고인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들에겐 누군가의 관심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살 유족에 대한 낙인효과를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월 국내 첫 자살 유족단체인 '한국자살유족협회'가 출범했다. 자살 유족이 직접 주체가 돼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과 관련 법 개정 등의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 협회 강명수 회장은 정부 정책홍보지 'K-공감'과 인터뷰에서 "자살 유족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온 사회가 자살을 나와 이웃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라야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에겐 '그냥 함께 아파하고 들어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간절하다.

bondo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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