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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착한 투자', '지속 가능한 금융'으로 불리며 지난 10년간 세계 자본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갈림길에 섰다.
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정책 방향이 엇갈리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ESG를 운용 원칙으로 삼아온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13일 국민연금연구원의 '월간 연금이슈 & 동향분석(제113호)'에 실린 'ESG 투자에 관한 논쟁과 정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ESG 투자에 대한 회의론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정말 돈이 되는가 하는 성과의 문제다. 보고서를 보면, 미국 주식시장의 대표 ESG 지수(MSCI USA ESG Select)는 장기 누적수익률에서 시장 전체 지수(MSCI USA)에 미치지 못했다. 3년, 5년, 10년 단위로 살펴봐도 수익률은 시장 평균보다 낮고 가격 변동성은 오히려 더 컸다. 위험을 고려한 수익성을 나타내는 샤프비율 역시 시장 전체 지수가 더 높아, ESG 투자가 재무적으로 우월하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
둘째는 ESG가 실제 세상을 바꾸는가 하는 실효성의 문제다. ESG 원칙을 표방하면서도 실제 포트폴리오에는 대형 화석연료 기업을 다수 포함한 펀드 사례처럼,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ESG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투자 행위를 의미하는지 모호하다는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이런 비판적 인식은 미국에서 구체적인 '반ESG'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플로리다주처럼 공공연금의 투자 결정 시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재정적 요소'만을 고려하도록 법으로 못 박는 주가 늘고 있다. 2021년부터 4년간 미국 40개 주에서 발의된 반ESG 법안은 392건에 달하며, 이 중 44건이 통과됐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의 기후 관련 정보 공시 의무화 규칙을 채택한 지 한 달 만에 자발적으로 효력을 중단하는 등 정책적 후퇴를 시사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골드만삭스, 블랙록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ESG 관련 연합체에서 잇따라 탈퇴하며 ESG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반면, 유럽연합(EU)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등을 통해 약 5만 개 기업에 ESG 공시 및 실사를 의무화하며 규제하는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최근 기업 부담 등을 이유로 일부 규정의 시행을 연기하고 내용을 완화하는 등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다. ESG의 제도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던 유럽마저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며 균형점을 찾아 나선 것이다.
결국 ESG 투자는 더 이상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각국의 정치·제도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맞춤형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환경은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기금에 '앞으로 ESG 투자의 원칙을 어떻게 정립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문가들은 ESG 투자의 동기가 재무적 수익(value)에 있는지, 혹은 비재무적 가치관(values)에 있는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불확실성이 커진 ESG 투자 환경 속에서 장기 자산운용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교한 원칙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sh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