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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한국전문직 美비자 쿼터' 할당 계기 삼아야

기사입력 2025-09-08 16:11

(서울=연합뉴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미국에서 일하던 우리 근로자 300여명이 불법 체류로 구금된 사태는 한미 양국이 인적·물적 투자 협력을 강화하던 와중에 벌어져 충격이 더 컸다. 시설 공사 필수 인력 등을 급히 파견하느라 체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불법 행위 자체에 대해 변명할 순 없다. 그러나 직접 투자를 재촉하면서도 정작 전문 인력이 문제 없이 체류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는 미국도 문제가 있다. 다행히 한미 당국이 교섭을 통해 추방 대신 출국 형식으로 조속히 전원 귀국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니 일단 사태가 봉합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는데도 대비하지 않은 건 무사안일로 비칠 수 있다. 미 현지 생산 시설을 보유한 우리 기업은 작업 기한을 맞추고자 우리 전문 인력을 급히 데려가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현지 파견에 필요한 전문직(H-1b) 비자 취득에 시간이 걸리니 노동 허가가 나지 않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상용(B1) 비자 신분으로 시설 공사 등에 투입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졌다. 언제든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불법 신분 단속을 강화하고 나선 건 일반인조차 다 알던 일이다. 교민 사회와 현지 기업들에서도 전격 단속이 이뤄질 거란 소문이 퍼져 있었다. 미리 대처했어야 하지만 우리 공관에선 제대로 사전 통보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이런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압박에 우리가 대미 직접 투자를 늘리기로 한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건 감정적으로 불쾌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냉정히 손익을 따져야 한다. 관점을 바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근본적 해결책은 우리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시의적절히 미국 노동 허가 비자를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캐나다, 멕시코, 호주, 싱가포르, 칠레에 전문직 비자 쿼터를 할당해 국가별로 매년 많게는 무제한으로 발급해준다. 우리도 FTA 체결국이지만 정작 이런 부분에선 혜택을 얻도록 협상 우선순위가 설정되지 못했다.



우리도 미국과 경협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직 비자 쿼터 별도 할당을 미국에 강하게 요구할 기회가 왔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역할을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과 근로자가 고육지책으로 불법과 편법을 택하도록 둬선 안 된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한국인에 취업비자(E-4) 쿼터를 연간 최대 1만5천 개 할당하는 법안이 계류돼 있다. 한국계 영 킴 하원의원(공화)이 발의한 법안인데,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해 미 의회 내에서 초당적 관심을 끌 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카운터파트인 미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설득과 로비 활동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 숙련 노동자만 대상으로 취업이 가능한 단기 비자면제프로그램 도입 등도 논의할 만하다. 양국이 한국인 근로자 비자 쿼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는 한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산업 협력 프로젝트도 삐걱댈 수 있다.



미국도 이번 일을 계기로 문제점을 체감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분야 등에서 협력 사업을 하려면 한국인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건 미국도 잘 아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인 인력 수급과 비자 발급 제도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났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국인 근로자 비자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낸 건 매우 고무적이다. 그는 언론인들과 만나 이번 사태를 직접 거론하면서 숙련된 전문가를 미국에 데려와 일정 기간 체류하며 미국인을 훈련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 해법을 직접 제시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도 이번 사태를 언급하며 투자국의 인재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들어와 머물 방법을 신속히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구금 사태가 전화위복이 돼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과 근로자들의 오랜 민원이자 숙원 사안인 한국 인력 취업비자 쿼터 할당이 실현되길 바란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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