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미 CIA의 '정권 교체' 비밀공작

기사입력 2025-10-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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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벌인 정권 교체 공작의 역사는 길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뒷마당 격인 중남미 지역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벌인 공작이 많다. 냉전 당시 특정 국가가 공산화되면 인근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공산화될 것이라는 도미노 가설이 있었다. 이 가설의 현실화를 막는 선봉에는 늘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있었다.

CIA의 첫 번째 작전 국가는 콰테말라였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후 오랫동안 독재가 계속된 이 나라에서 1944년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 첫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1950년 민주 선거를 통해 당선된 하코보 아르벤스구스만 대통령은 토지개혁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미국 자본에 타격을 줬고 이 때문에 마찰을 빚은 미국 정부는 급기야 1953년 아르벤스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공작에 들어간다. 반군 양성과 지원, 심리전 등 각종 공작을 벌여 이듬해 결국에는 아르벤스 대통령이 물러나게 한다. 이후 친미 정부가 들어섰다.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에도 CIA가 깊이 관여했다. 40여년간 선거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온 칠레에서 1970년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아옌데는 주요 산업의 국유화 등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충돌한다. 칠레에 많은 투자를 한 미국은 또 아옌데 정부 전복 계획을 세운다. CIA는 언론 매수, 경제 교란, 군부 매수 등 다양한 비밀공작을 벌여 군사 쿠데타를 유도했다. 1973년 쿠데타군에게 몰린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최후저항을 하면서 마지막 연설을 남긴다. "저들은 힘이 있고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지만 사회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칠레에는 이후 피노체트의 장기 독재 시대가 이어졌다.

CIA는 이 밖에도 1961년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피그스만 침공 공작을 벌이다 실패했고, 1980년대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콘트라 반군 공작을 벌이는 등 중남미 지역에서 숱한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CIA의 비밀공작은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지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주권 침해와 인권 유린, 반미감정 확산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내 CIA 비밀작전을 승인했다고 한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의 교체까지 시도할 수 있는 작전을 허가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와 최근에는 마약 카르텔을 단속하는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지난달부터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군자산을 배치하고 '마약 운반선'을 여러 차례 격침하기도 했다. CIA 비밀작전이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노리는 것이라면 서방 진영으로 기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다른 점이 뭔가 싶다. 한쪽은 전면 군사작전을 벌였고, 한쪽은 비밀작전을 하는 것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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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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