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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입양 가족을 찾는 단체 FPF(Find Parents Family)의 류동익 공동대표(사회복지학 박사)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지난 9월 9일을 시작으로 네 차례 진행됐다.
류 대표는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입양서류에는 크고 작은 조작이 있었다"면서 "이는 더 많은 아이를 더 빨리 입양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입양기관들이 아이 1명당 수천만 원의 돈을 받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런 조작이 발생했다"면서 "이는 국제 기준으로도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는 "이런 서류 조작 때문에 입양인들이 한국의 친부모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국가가 입양인의 친부모 찾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류 대표는 17년째 입양인 친가족 찾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2009년부터 네덜란드 방송사의 입양인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근래에 이 프로그램이 중단됐지만 류 박사는 FPF 등을 통해 가족 찾기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 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 대학에서 범죄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개인 사정으로 귀국한 그는 한국의 캘빈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은 류동익 공동대표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 입양인들은 곧바로 구분된다고 했는데.
▲ 내가 네덜란드에서 유학할 때 한국인을 만나면 입양인인지, 교포인지 금방 식별됐다. 입양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불안과 경계심 속에서 살았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에 매우 예민하다.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는 늘 신중함과 방어적인 태도가 배어 있다.
-- 본인은 신(神) 외에는 누구도 가족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 외국으로 입양 간 가족은 사회적 형벌을 받는 것과 같다. 남겨진 가족들 역시 평생 고통 속에 산다. 새벽에 외국에 있는 입양인들이 울면서 나한테 국제 전화를 하기도 한다. "친부모님을 만나고 싶다.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입양 기록이 조작돼 있기 때문이다.
-- 입양서류가 어떻게 조작돼 있나.
▲ 부모가 있는데도 입양서류의 부모란에 'Unknown', 'No Record'로 기록돼 있는 사례가 많다. 부모를 모른다는 뜻이다. 한쪽 부모가 독단으로 입양 보냈는데, 양부모가 동의했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단순 실종을 유기로 둔갑시킨 사례도 있다.
▲ 미샤의 네덜란드 양부모는 입양 서류를 갖고 있다. 한국 입양기관이 보내준 것이다. 거기에는 미샤가 유기된 상태에서 발견됐고, 친부모는 미상(모른다)이라고 돼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샤의 아버지가 입양 보냈고, 어머니는 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미샤의 양부모는 유기된 한국 아이를 입양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허위 기록에 속은 셈이다. 입양서류에 있는 미샤의 한국 이름과 생년월일도 사실과 다르다. 이렇게 기초적인 정보가 조작되면 입양인의 친부모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 여성인데 남성 이름으로 기록된 사례도 있다고 하던데.
▲ 어떤 입양인은 한국에 있는 친엄마를 찾고 싶어 했다. 입양기록을 보니 엄마의 직업은 '식모'로 돼 있었고, 남성 이름이었다. 우리는 입양인이 태어났다는 조산소의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그 어머니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름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 다른 유형의 서류 조작이 있다면.
▲ 딸을 연달아 낳은 뒤 또 딸을 낳자 입양을 보낸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입양서류에는 아이의 이름이 허위로 기재돼 있었다. 어머니가 지어준 것과는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가 찾아갔더니 친어머니는 "내 딸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를 범죄단체 조직원으로 오해했다. 나중에 DNA(유전자) 검사로 친자 관계가 확인됐는데도 그런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런 검사 결과도 조작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 그 가족은 상봉을 못 했나.
▲ 다행히 담당 경찰관의 중재로 일단 어머니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분은 자신의 다른 딸과 사위도 데리고 나왔다. 여러 가족이 함께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도였다. 어머니는 입양인을 직접 본 순간 딸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외모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그날 많이 울었다.
-- 입양인의 이름은 누가 조작한 것인가.
▲ 이 입양인은 서울의 조산소에서 태어났다. 당시 일부 조산소는 입양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입양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런 조산소가 이름을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입양기관 역시 기본적인 신원 확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서류를 작성했다.
-- 본인이 가족 찾기에 나섰던 입양인 사례 가운데 생년월일 조작도 있었다고 했는데.
▲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 출신 여성 입양인이 있다. 그녀는 일란성 쌍둥이였다. 아버지는 당시 노동 일을 하고 있었고, 생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부부는 이미 딸 1명이 있는 상황에서 여자 쌍둥이가 태어나자 1명을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쌍둥이 중 언니가 네덜란드로 가게 됐다.
-- 그 언니가 성장해서 친부모 찾기에 나선 것인가.
▲ 우리는 노력 끝에 친가족의 주소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쌍둥이 동생은 우리한테 적대적이었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네덜란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 딸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당사자가 만나기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가족들은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 그 입양인은 왜 만남을 거부했을까.
▲ 이 말을 듣고 우리는 곧바로 네덜란드에 있는 입양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본인은 친가족과의 만남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했다. 대사관으로부터 그런 문의가 온 적도 없다고 했다. 대사관 직원이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허위 답변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 그래서 어떻게 됐나.
▲ 한국의 친가족이 전후 사정을 알았으니 오해가 싹 풀렸다. 우리는 쌍둥이 자매끼리 영상통화를 하도록 주선했다. 자매라는 사실은 금방 확인됐다. 두 사람의 얼굴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키도 같았고, 노화의 정도 역시 비슷했다. 먹는 음식과 환경이 달랐는데도 모든 신체적 모습이 같았다.
-- 이 입양인의 입양 서류에도 조작이 있었나.
▲ 쌍둥이의 생년월일은 당연히 똑같아야 한다. 그런데 쌍둥이 언니-동생의 생년월일이 달랐다. 알고 보니 쌍둥이 동생의 국내 서류에는 양력 기준 생년월일이 기록돼 있는데, 언니의 입양 서류에는 음력 기준으로 적혀 있었다. 어머니의 이름도 가운데 자가 '귀'에서 '기'로 바뀌어져 있었다. 고의적인 서류 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 신분 도용도 있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네덜란드로 입양 간 50세의 여성은 20년 넘게 한국에서 친어머니를 찾고 있다. 입양기관은 2005년에 이 입양인의 친부모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똑같은 여성을 찾아냈다. 입양인도 여러 정보가 일치하기에 친엄마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분은 친어머니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 입양 보내놓고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친부모들이 많지 않은가.
▲ 그 입양인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다음 해인 2006년에 한국에 와서 그분을 직접 만났다. 여전히 그분은 친어머니가 아니라고 했다. 2016년에 이 입양인은 그분에게 유전자 검사를 부탁했다. 그 결과 친어머니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 입양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명의가 통째로 도용된 것이다. 입양 서류에는 '생모가 고졸이고, 혼자 병원에 찾아와 출산했으며,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생부와 헤어졌기에 결혼을 계획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이런 기록 내용조차 진실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 명의를 도용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입양 간 아이가 나중에 성장해서 친부모를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입양기관이 아이를 입양 보낼 때 친모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나.
▲ 당연히 신분증 대조를 통해 본인인지 확인하는 게 기본이다. 당시에는 그런 확인 작업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왜 확인하지 않았을까.
▲ 입양기관이 아동을 더 빠르게 해외로 보내기 위해 이러한 조작을 묵인했거나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 이런 서류 조작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 입양 기관들은 불법행위와 서류 조작에 대해 아직도 공식적 사과를 하지 않았다. 친부모를 못 찾게 서류 조작과 불법행위를 한 기관과 개인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국제법상으로 인륜에 반하는 범죄는 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 인권 보호는 국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입양은 국가의 관리 아래 진행된 행정 행위다. 그 결과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는 입양인들이 친가족 찾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현재 입양인들은 입양기록에 접근하기 어려운데, 이에 대한 해결책도 마련해야 한다. 경찰과 지자체는 공조해서 친부모를 찾아줘야 한다. 입양인과 친가족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해서 관리해야 한다.
(3차 인터뷰 기사 끝)
<류동익 대표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얼른 입안 좀 보자"…입양간 아들 30년만에 만난 아버지 첫마디(2025년 9월19일 송고)
입양 가게 된 것은 케이스가 다양하다. 보육원에 맡겨졌는데 입양 간 경우가 있고, 친부모가 입양을 원한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까지는 가난, 그 이후에는 불륜이나 혼전 동거로 아이를 낳아서 입양 보낸 경우가 많았다.
입양 가게 된 것은 입양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입양인들은 그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꼭 이겨내시기 바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반드시 가족 찾을 길이 열릴 것이다.
친생부모들은 용기 내어 자녀들을 만나시길 바란다. 모든 사람은 실수할 수가 있다. 슬픈 과거를 가질 수 있는데, 이를 치유할 방법이 있다. 자녀들은 결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부모의 건강과 경제 여건을 걱정한다. 그들을 꼭 만나주시고 그들을 꼭 안아주셨으면 한다.
<류동익 대표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네 엄마는 고교시절 딸 낳아 입양 보낸 사람이다"(2025년 10월4일 송고)
일부 부모는 입양 간 자녀가 성인이 돼서 찾아왔을 때 외면하기도 한다. 자기의 가정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입양인은 상봉을 거절당했을 때 상심이 커서 많이 운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친부모가 자신들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부하면 입양인은 아동권리보장원(NCRC) 등으로부터 부모의 주소나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놨다. 이 때문에 심각한 질병에 걸린 입양인이 치료를 위해 친부모의 유전자 정보가 절박하게 필요한데도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진다.
입양인들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개인정보보호 예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입양인 부모를 찾도록 하는 행정규정도 만들었으면 한다.
keunyou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