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⑨ 시행 17년 맞은 국민참여재판…퇴행이냐 안착이냐

기사입력 2025-10-19 08:40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인중개사 자격 없이 부동산 거래를 중개했다는 이른바 '복덕방 변호사' 논란으로 기소된 '트러스트부동산' 대표 공승배 변호사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고 있다. 2016.11.7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대법원 국정감사를 13일 국회에서, 15일 대법원(현장검증)에서 두 차례 여는 국정감사 계획을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통과시켰다. 사진은 10일 국정감사를 앞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2025.10.10 jjaeck9@yna.co.kr
(대구=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박모(82) 할머니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11일 오후 방청객이 대구법원 11호 법정 앞에서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주 박모(82) 할머니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11일 오전 담당 검사가 대구법원 11호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5.12.11 psykims@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우민제 판사가 그림자배심원들을 대상으로 국민참여재판과 그림자배심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림자배심원은 국민참여재판 과정을 지켜본 뒤 유·무죄나 양형에 모의 평결을 하고 재판제도 개선을 위한 의견도 낸다. 정식 배심원과는 달리 판결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2025.6.24 cityboy@yna.co.kr

도입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아직 사법 시스템 안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국민참여재판이 정부와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 속에 다시 활성화하는 길로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참여재판 대상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살인 등 일부 범죄에 대해선 필수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하도록 하는 법률안도 발의된 상태다. 사법부도 사법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편으로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는 데 긍정적 입장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2008년 1월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재판에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 판단과 양형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다.

참여정부 시절 엘리트 법관 중심의 사법 구조에서 벗어나 국민의 사법참여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했고, 이에 따라 출범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논의의 결과물이다. 당시 사법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위한 사법개혁의 핵심 과제로 주목받은 제도다. 대륙법계 요소가 강한 우리 사법 시스템에 영미법계 제도를 이식해 시민의 참여를 강화한 것이기도 하다.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변론이 종결된 뒤 재판장으로부터 공소사실 요지와 피고인 및 변호인 주장의 요지, 증거능력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평결을 진행한다.

다만, 배심원단의 의견은 법관의 최종 판결에 대해 법적 구속력 없는 권고적 효력만 갖는다.

법관이 반드시 배심원단의 평결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결과 다르게 판결하려면 그만큼 설득력 있는 판결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3천80건 가운데 93.8%인 2천889건에서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일치했다.

피고인이 희망하는 경우에만 실시되며, 사형·무기·단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합의부 사건이 대상이다.

2015년 사이다에 농약을 넣어 6명의 사상자를 낸 '농약 사이다'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져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닷새간 이뤄진 국민참여재판 결과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박모씨를 유죄로 판단했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0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고자 그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 사건에선 배심원이 모두 무죄 평결을 냈고,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그는 2심과 3심에선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처벌을 사실상 면해주는 처분이다.

국민참여재판은 그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강화와 투명한 재판을 통해 전관예우나 무전유죄·유전무죄와 같은 논란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2017년 이후 실시 건수가 연간 100건 아래로 뚝 떨어져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도별 건수를 보면 도입 첫해인 2008년 64건에서 2013년엔 345건으로 크게 늘었고 이후에도 2014년 271건, 2015년 203건, 2016년 305건 등으로 연간 200∼300건을 유지하며 순항하는 듯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 96건으로 감소한 이래 2021년 84건, 2022년 92건, 2023년, 95건, 2024년 91건 등으로 저조한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과 함께 법률상 '피고인이 신청하는 경우'에만 시행할 수 있다는 점이 근본적 한계로 꼽힌다.

우리 헌법에서 '법관에 의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측면이 크지만, 이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크거나 중한 범죄보다는 피고인이 '재판부 쇼핑'이나 온정적 판단을 꾀하려는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이 집중돼 도입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재판부의 자의적인 국민참여재판 배제도 저조한 실시율의 원인으로 꼽힌다.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도 법원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재량으로 배제할 수 있다. 배심원의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 우려가 있거나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원치 않는 경우, 그 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다.

최근 5년간 신청 대비 배제 건수 비율은 30% 안팎 수준이다. 법조인들의 소극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가 과도하게 제약된다는 지적도 있다.

위기론이 대두한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정치권에서 사법개혁이 전면에 등장하며 전환점을 맞은 모양새다.

국민참여재판 대상 확대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포함된 데 이어 지난달 발표한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도 한자리를 차지하며 정부 여당의 추진 의지가 재확인됐다.

국민참여재판을 떠받치려는 사법부 차원의 노력도 이에 못지않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국민참여재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입법안은 발의된 상태다.

지난 4월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살인·존속살해·강도살인 등 고의에 의한 생명침해 범죄를 필수적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으로 하고, 지방법원 본원 합의부뿐 아니라 지방법원 지원(소규모 지원 제외)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필수적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을 도입하는 안에 대해선 대법원 법원행정처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 확보라는 국민참여재판의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국민참여재판이 안정적인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며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다만 범위가 비약적으로 확대될 경우 소송 지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필수적 대상 사건을 고의에 의한 생명침해 범죄로 유형화하고 법원의 여건 마련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국민참여재판에 여전히 소극적인 법관들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선 국민참여재판 전담재판부를 설치해 각 합의부의 업무 부담을 감소시키는 방안이 제시됐다. 특히 참여재판 실시사건에는 충분한 가중치를 부여하고, 전용 법정과 전담 직원이 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담당 재판부에 경제적·인사상 혜택을 제공하거나 실제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에 대한 수당 지급을 늘리는 등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홍보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배심원으로 진행되지 않은 일반 국민이 '그림자 배심원'으로서 재판을 방청하고 실제 배심원과 똑같은 평의·평결 절차까지 진행하는 그림자 배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3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민이 사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라며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제도 개편이 시급한데 입법안도 발의된 상태라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already@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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