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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로 조용필 '고추잠자리' 부활
"노래, 짧은시간에 그 시절 정서 소환 강력한 힘"
"접근성 좋은 플랫폼서 옛가요 함께 향유하며 세대통합"
지난 11일 첫방송한 tvN 드라마 '태풍상사' 1회 시작과 동시에 약 4분간 또렷하게 울려 퍼진 노래의 가사다.
신나는 리듬이 활기찬 분위기를 북돋우는 가운데 특히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히도록 강조한 연출은 이 드라마가 향후 전개할 스토리를 노래에 실어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해당 노래는 1993년 발표된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19일 4회 시청률(닐슨코리아) 9%로 케이블·종편 채널 동시간대 1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드라마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를 배경으로 졸지에 아버지의 작은 무역회사를 물려받게 된 26세 '오렌지족' 청년의 분투기를 그린다.
30여년 전 히트를 한 '나는 문제없어'를 도입부에서 영리하게 써먹은 '태풍상사'는 이와 함께 클론의 '난'(1996)과 더블루의 '그대와 함께'(1994),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1997) 등으로 시청자들이 1997년으로 곧장 순간 이동을 하게 이끌었다.
'태풍상사'를 비롯해 최근 방송·영화에서 옛가요를 잇달아 소환하고 있다. 복고 열풍과 함께 '세대 통합'까지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왕' 조용필이 40여년 전인 1981년 발표한 '고추잠자리'는 지난달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주인공 유만수(이병헌 분)의 야심찬 계획이 어이없이 어그러지는 대소동에서 큰 볼륨으로 흘러나오는 '고추잠자리'는 극에서 압도적인 존재감과 위력을 발휘하며 '어쩔수가없다' 관객에 강렬한 인상을 새기고 있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로 시작하는 애틋한 시적인 가사가 황당한 슬로우 모션 위에 오버랩 되면서 블랙코미디적 폭소를 유발한다.
관객 김모 씨는 21일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나오니 '고추잠자리'만 생각난다"며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이자 음악이었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해당 장면에 대해 "조용필 고추잠자리 삽입이 신의 한 수였다"(유튜브 이용자 '김영희***'), "'엄마야~'라는 부분이 마치 이 영화처럼 블랙 코미디 같다"('dav***') 등 호평일색이다.
'어쩔수가없다'가 지난 8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고 세계 200여개국에 판매되면서 1980년대 한국 가요 '고추잠자리'가 세계인의 귀도 사로잡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KBS는 지난 6일 추석에 '광복 80주년 대기획-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공연을 방영해 '대박'을 쳤다. 시청률 15.7%로 지상파·종편·케이블을 통틀어 전체 1위. 75세 조용필이 안방극장 시청자 세대 대통합을 이룬 것이다.
유튜브 이용자 'whi***'는 "83세 우리 엄마, 50대 남편, 20대 딸들 모두 둘러앉아 노래 부르고 감동이었다", 'hsk***'는 "오랜만의 대통합 감동이네요"라며 세대를 아우른 공연에 엄지를 들어올렸다.
네이버에서도 "조용필 넘 대단한거 같아 울가족을 모이게 했어"('hyy***'), "이번 추석은 세대통합 가족통합이었음. 가왕의 위력이 그 어떤 정치 보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듬 감사합니다"('wws***'), "진정한 세대 통합이죠"('mad***'), "덕분에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즐기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iam***') 등 댓글이 쏟아졌다.
올봄 큰 사랑을 받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옛가요의 향연이 펼쳐졌다.
1950년대에서 시작해 1980~90년대를 관통하는 이 16부작 시대극은 매회 오프닝곡으로 1968년 발표된 김정미의 '봄'을 틀면서 10대 시청자의 귀에도 50여년 전 가요가 흘러 들어가게 했다
2화 유채밭에서 펼쳐지는 애순(아이유)과 관식(박보검)의 '달콤한 입술 박치기' 장면에서 1984년 산울림이 발표한 '너의 의미'가 화면을 감싸 안았고, 애순과 관식이 관식 엄마의 패물을 훔쳐 사랑의 야반도주를 할 때는 김정미의 '바람'(1973)이 흘렀다.
또 3화 관식이 배에서 뛰어내려 애순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헤엄쳐 갈 때는 "은하수를 타고 무지개를 건너 사랑하는 그대 꿈속으로 갈까~"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는데, 요절한 천재 가수 장덕의 '얘얘'(1988)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산울림의 노래는 '너의 의미' 외에도 '나 어떡해'(1978)와 '아니 벌써'(1977)가 비중 있게 쓰였다.
이와 함께 김현식의 불후의 명곡인 '내사랑 내곁에'(1991),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축제'(1993), 에코 '행복한 나를'(1997), H.O.T.의 '행복'(1997)가 주요 장면에서 심금을 때렸다.
여기에다 김추자의 '소문났네'(1971),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1986), 이치현과 벗님들의 '당신만이'(1980), 김수희의 '애모'(1990),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1991),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1995) 등도 시청자를 시간여행 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작년 12월 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2'를 통해서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1988)가 세계 시청자들에게 닿았다.
'그대에게'는 5화 단체전 게임 장면에서 적막을 깨고 흘러나오며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장치로 활용됐다. 이 노래는 앞서 2015년 '응답하라 1988'에서도 주요 OST로 쓰인 바 있다.
MBC TV 예능 '놀면 뭐하니'는 지난 7월 26일부터 두달여 '80s MBC 서울가요제'를 개최해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1982),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1987), 조용필의 '모나리자'(1988) 등 1980년대 히트곡을 재현했다. 시상식이 담긴 지난 4일 방송은 자체 최고 시청률 6.6%를 기록했다.
유튜브에는 "80년대 어린 나와 젊은 부모님 생각에 울컥"('가브리***'),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내 청춘아"('duc***'), "왜 눈물이 나죠?"('뷰티**') 등 옛 추억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지난달 23일 시작한 SBS TV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도 옛가요 열풍을 부채질한다.
평균 나이 18세의 참가자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된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너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 강수지의 '흩어진 나날들'(1991), 임재범의 '너를 위해'(2000),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1986), 황치훈의 '추억속의 그대'(1988) 등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부르며 세대 간 공감을 이끌어냈다.
'우리들의 발라드'는 3주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복고를 추구하는 시기는 대개 '지금이 그때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자리할 때 나타난다"며 "이는 인간이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됐던 어린 시절, 즉 가장 편안했던 시기를 그리워하는 퇴행적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노래는 짧은 시간 안에 그 시대의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며 "현재의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서를 통해 오늘을 버텨내는 문화적 지혜"라고 덧붙였다.
또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악적 취향과 문화적 선택이 세대별로 분화된 상황"이라면서 "공영방송 등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에서 전 세대가 옛날 가요를 함께 향유하며 세대 간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haemo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