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볼지도] 제주 해녀음식 사라질 판…"감태도 오분자기도 없어요"

기사입력 2025-11-08 10:25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귀포=연합뉴스) 2024년 10월 14일 제주 서귀포시 보목동 섶섬 10여미터 수중에 서식하던 말미잘 군락의 일부가 하얗게 변해 죽어가고 있다. 흔히 니모로 알려진 흰동가리는 말미잘과 공생관계로 말미잘 군락은 흰동가리 생존의 필수요소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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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연합뉴스) 식목일인 지난 2013년 4월 5일 제주도 서귀포시 하예동 앞바다에 갯녹음(백화현상)이 진행돼 해초가 대부분 사라지는 등 황폐화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해경청 특공대원들이 '바다 식목'행사의 하나로 감태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 수협위판장 앞에서 지역주민과 공무원·군인들이 남해안에서 떠밀려 온 것으로 추정되는 해양쓰레기 100t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귀포=연합뉴스) 2025년 7월 3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섭지해수욕장에 구멍갈파래가 잔뜩 유입돼 썩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7년 137t 생산하던 감태, 2023·2024년 0t "감태 완전히 사라져"

"바다 황폐화는 인재…보호구역 지정하고 전담부서 만들어 관리해야"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가 신음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오르고, 각종 오염원으로 인해 바닷속이 사막처럼 변하면서 감태와 미역, 톳, 오분자기, 전복 등 해산물도 씨가 말라가고 있다.

제주 바다가 얼마나 황폐해져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는 제주 바다라는 삶의 터전에서 제주 해녀들이 길어올리는 식재료를 활용한 제주 향토음식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 "10년 전과 하늘과 땅 차이…감태 완전히 사라져"

"바다가 너무 황폐해져 버렸어요. 감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미역하고 톳은 조금 있기는 한데 옛날 10년 전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올해 56년째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 장영미(71) 제주해녀협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제주 바다의 위기를 이같이 말했다.

잠수복만 입고 맨몸으로 바닷속에 들어가 오랜 세월 해산물을 채취해 온 해녀는 바다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바다가 너무 따뜻해져 버려서 추울 때 나와야 할 미역과 같은 물건(해조류)이 나오지 않는다"며 "제주도와 정부에서 종패(種貝) 방류 사업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바다가 황폐해지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장 제주해녀협회장은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 뭐 합니까. 바다가 없으면 우리 해녀도 없어요. 우선 바다부터 살려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 바다는 시간이 갈수록 따뜻해지고 있다.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2024년 마을어장 자원생태 환경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2년까지 55년간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36도 올랐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표층 수온 변화 0.52도의 2.5배에 달한다.

연구원이 2013년부터 10여년간 제주지역 월별 표층수온을 확인한 결과 연중 가장 수온이 낮은 시기인 2월 겨울철 수온이 16도 수준으로 올랐던 해가 2016년, 2017년, 2019년, 2020년, 2023년, 2024년 등 6차례였다.

과거 13도 수준이었던 2월 표층수온이 3도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8월 여름철 제주 표층수온이 31도 이상의 고수온을 기록하는 등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연구원은 겨울철 수온이 높을 경우 해조류의 번식과 생장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겨울철 고수온과 여름철 고수온은 감태, 미역 등 갈조류의 자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주 서부지역인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2리의 경우 지난해 8월 고수온 현상이 나타난 이후 10월경 조사했을 때 대부분의 감태 군락지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 동남부 지역인 서귀포시 하효동, 위미2리, 신천리 등의 마을 어장에서는 대형 갈조류 생체량이 급감했고, 봄과 여름 조사에서도 갈조류 출현이 극히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제주 전역에서 감태·미역·톳과 같은 온대성 해조류인 갈조류가 줄고, 따뜻한 바다에서 서식하는 열대·온대 혼합성 해조류인 홍조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또 고수온에서도 비교적 강한 생존력을 가진 거품돌산호, 그물코돌산호 등이 감태·미역·톳이 사라진 서식지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2∼12월 제주지역 연안 10개 마을어장을 조사한 결과 총 142종의 해조류가 출현했으며 이중 홍조류가 100종(70.4%)으로 가장 많았고, 갈조류 24종(16.9%), 녹조류 18종(12.7%)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분자기, 전복, 소라 등 어패류와 갑각류의 먹이, 은신처, 산란장을 제공하는 해조류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동시에 제주 바다 전체 생태계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셈이다.

연안 암반 지대에 생물이 살 수 없이 사막처럼 황폐해져 '바다 사막'이라고 불리는 갯녹음 현상도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주지역 해양 수산물 생산량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지난 8월 발행된 2025년도 제주도 해양수산현황을 보면 감태 생산량은 2017년 137t, 2018년 117t, 2019년 78t, 2020년 78t, 2021년 65t, 2022년 0.8t으로 줄어든 이후 2023년과 2024년 '제로'(0t)다.

일부 개별적으로 감태를 사고팔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제주에서 유통되는 감태는 현재까지 없다.

톳은 2017년 731t, 2019년 210t, 2021년 100t, 2023년 85t으로 수확량이 줄어든 뒤 지난해 50t 미만으로 떨어졌다.

우뭇가사리도 2017년 995t이었던 생산량이 2021년 389t, 2024년 121t으로 크게 줄었다.

이들 해조류를 먹고 사는 오분자기 채취량은 1995년 159t에서 2000년 35t, 2010년 27t으로 급감하더니 2011년부터 최근까지는 연간 3t 내외로 잡히며 사실상 씨가 말랐다.

양식을 제외한 전복 채취량 역시 2000년 11t에서 2015년 8t, 2020년 2t, 2024년 0.7t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 바다 생태계 변화에 해녀·향토음식 사라질 위기

제주 바다 생태계 변화는 그대로 제주 해녀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고령화로 인한 해녀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과 더불어 해조류·어패류 채취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해녀 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어촌계에서는 청년층 해녀가 들어오더라도 소득 수준이 낮아 부업을 하지 않고선 1년 이상 버티는 것이 힘들다고 얘기한다.

제주 해녀는 1980년 7천804명, 1990년 6천827명, 2000년 5천789명, 2010년 4천995명, 2017년 3천985명, 이어 2023년 2천839명, 2024년 2천623명 등으로 현직 해녀수가 2천명대로 주저앉았다.

현직 해녀 중 30세 미만은 6명(0.23%), 30∼39세 35명(1.33%), 40∼49세 86명(3.28%), 50∼59세 144명(5.49%), 60∼69세 758명(28.90%), 70∼79세 1천165명(44.41%), 80세 이상 429명(16.36%)이다.

60세 이상 해녀가 전체의 89.67%에 달한다.

장영미 제주해녀협회장은 "지금 칠십이 넘었는데 물질을 하면 앞으로 몇 년을 더할 수 있겠느냐"며 "바다를 살려 젊은 새내기 해녀가 많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녀들이 채취한 수산물이 줄면서 제주향토음식 역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제주향토음식의 특색은 바다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신선한 청정재료에 있다.

싱싱한 원재료의 맛을 간직하면서 멋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조리하려면 계절에 따라 나오는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식재료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워졌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향토음식 중 필수 코스로 여겨지던 오분자기뚝배기는 파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먹기 힘든 음식이 됐다.

과거 전복이 오분자기보다 5배는 비싸 전복뚝배기가 귀했고 오분자기뚝배기는 비싼 전복을 대신하는 서민 음식이었다.

하지만 오분자기는 성장이 느려 경제성이 떨어지는 탓에 양식을 하지 않아 오히려 전복보다 더 구하기 힘들어졌다.

물론 양식이 아닌 자연산 활전복을 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톳, 모자반, 감태, 미역 등 과거 흔했던 제주산 식재료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몸국, 톳밥, 성게미역국 등 앞으로 진정한 제주향토음식을 맛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제주관광대에서 관광호텔조리과 교수를 지낸 부정숙 제주향토음식 명인은 "자연산 식재료가 가장 중요한 제주향토음식 강의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재료를 구하는 일"이라며 "기후 위기 상황에서 제주어로 '물토새기'라 하는 군소를 비롯해 성게, 전복 등 질 좋고 가격도 저렴한 자연산 원물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오분자기 같은 경우는 종패(種貝)를 제주 앞바다에 뿌려도 안 자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김지순 제주향토음식 명인 역시 제주에서 나는 10가지 해조류를 재료로 향토음식 발표를 하는데 정작 음식을 재현하는 것보다 식재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너패('넓패'의 제주어)라는 해조류를 해녀들에게 부탁해도 구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구해 국을 만들었다"며 "몸국의 주재료인 몸('모자반'의 제주어)도 예전에는 거친듯하면서도 국을 끓이면 제대로 된 맛이 우러나왔는데 요즘에는 양식을 해서 그런지 너무 부드러워져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 시민단체 "바다 황폐화는 인재…전담부서 만들어 관리해야"

제주 바다의 위기는 단순히 기후변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육상에서 이뤄진 난개발로 인해 해상으로 들어오는 오염이 심각하다. (중략) 해양 주변에 밭이 많은데 농약과 비료를 뿌리고 비가 오면 다 바다로 향한다."(법환동, 하모리 어촌계)

"양식장 배출수가 문제다. (배출수를 통해) 사료 찌꺼기가 막 섞여 나가 그게 쌓여있다. 적게는 10㎝, 많게는 15㎝까지 쌓여있다. 양식장이 없을 땐 황금어장이었지만, (지금) 소라 같은 경우 총허용어획량 물량도 못 채운다."(일과2리 어촌계)

"고산지역은 정말 해양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곳 중 하나다. 차귀도 주변, 항구 주변으로 정말 쓰레기가 많다. (중략) 해녀들도 바닷속에 쓰레기가 많다고 얘기한다."(고산리 어촌계)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발간한 '제주지역 어업활동 여건과 해양환경 변화에 대한 어민면접조사 보고서'는 제주 어촌계 주민의 목소리를 통해 바다 오염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있다.

해양쓰레기와 양식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물질, 연안개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제주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는 2020년 1만6천622t, 2021년 2만1천489t, 2022년 1만7천17t, 2023년 1만698t, 2024년 1만841t 등 5년간 7만6천667t의 해양쓰레기를 기록하며 전국 2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해양오염의 지표종으로 거론되는 구멍갈파래 역시 평년 2∼3천t 수거되던 것이 2022년 5천t, 2024년 9천t으로 늘어났다.

환경단체는 제주 해안가에 구멍갈파래가 급증하는 원인을 양식장 배출수와 생활 오·폐수 등 오염물질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황폐해져 가는 제주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보호가 필요한 지역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관리·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바다를 보호하고 생태계를 지켜내면 이러한 효과가 해양보호구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구역 밖으로 확산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어족자원이 고갈되는 것을 막고 어족자원을 풍부하게 유지하는 것이 결국 어민들의 권익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또 갈조류 서식지 복원과 해조류 산란장 보호를 위한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종패(種貝) 방류나 인공어초 사업만으로는 해양생태계 회복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어장 단위의 생태복원사업과 해조류 번식지 복원을 위한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제주 바다에 영향을 미치는 육해상 오염원에 대한 관리·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제주도는 한반도의 기후위기 변화상을 보여주는 척도이자 최전선"이라며 "이러한 제주 바다 환경 변화에 대처하고 관련 정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제주도에 해양 환경 전담 부서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 바다는 제주도민의 생활 터전이자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 자원이다. 아무리 좋은 제안과 정책도 제대로 수행한 전담 조직이 없다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조직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bjc@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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