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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극한기후'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최악 폭염', '괴물 폭우' 같은 표현도 낯설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남쪽 끝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겨지지만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을 가장 먼저 맞이하며, 나날이 심각해지는 폭염·폭우·폭설 등 극한기후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있고 관광산업과 농·수산업 의존도가 높아 위험 기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제주가 겪어온 기상 재해를 되짚어 보고 방재 대책을 살펴보는 기사를 5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오늘날 자연재난 대책이 체계화되고 첨단 기술과 장비가 방재에 활용되고 있지만, 극단적 이상기후가 심화하면서 대책 고도화도 요구되고 있다.
◇ 태풍도 견디는 돌담, 마을마다 전승되는 '장마 종료' 가늠 지혜
제주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돌담. 여기에는 강한 비바람을 이겨낸 제주인의 지혜가 담겨있다.
얼핏 보면 허술하게 쌓여있는 듯하지만, 웬만한 강풍은 버텨낼 수 있다. 돌 틈으로 바람을 통하게 함으로써 강풍의 저항을 고스란히 받아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집 주변에 돌담을 쌓는 경우도 많았다. 돌담이 울타리이자 방풍벽 역할을 해줬다.
농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캐낸 돌덩이들을 주위에 쌓으면서 생겨난 '밭담'은 농경지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물론 농작물과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제주밭담은 2013년 1월 국가중요농어업유산으로 지정됐고, 2014년 4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장마와 관련해서는 '마가둠'(장마 그침)과 '마가지'(장마가 그친 뒤 조 농사 짓기)라는 말이 있다.
조 농사를 지으려면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나서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밭을 잘 다지고 밟아준 뒤 4∼5일 동안 비가 오지 않아야 싹이 잘 돋았다.
여름엔 조 농사로 먹을거리를 마련했던 제주에선 '마가둠'이 매우 중요했기에 마을마다 바람, 무지개, 노을 등으로 마가둠을 가늠하는 지혜가 전승됐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해녀들 또한 날씨에 민감했다.
안전을 확보하며 많은 어획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물때는 물론 조류와 풍속·풍향, 해안 지형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더위를 이겨내는 지혜도 있었다.
바닷물마저 미지근해지는 한여름 제주에서는 연중 18도 안팎을 유지하는 용천수에 몸을 담그는 피서 문화가 있다. 용천수가 땀띠를 사라지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지금도 여름철이면 도내 곳곳 용천수 노천탕에는 피서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 폭포수를 맞는 '물맞이' 풍속도 있고, '이열치열' 피서법으로 '모살뜸'(모래찜질)을 하기도 한다.
◇ '장마 끝' 마불림제, 단비 바라는 기우제…"풍랑 없도록" 영등제·해신제도
날씨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보니 신에게 기대기도 했다.
화산섬이라 비가 내려도 금세 땅속으로 스며들어버리는 제주에서는 특히 한 해 농사와 직결된 '비'와 관련된 신앙 문화들이 있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는 '마불림제'라는 마을 당굿이 있다. 송당본향당에서 매해 음력 7월 중순경 하는 마불림제는 장마 또는 곰팡이를 의미하는 '마'를 날려 보내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무속 의례다.
제주지방기상청이 발간한 '제주기상 100년사'에서는 마불림제와 관련해 "실제 마불림제 시기인 음력 7월 중순께의 평년 제주 상대습도는 76.8%였으며, 그 이후 계속해서 습도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실제 마불림제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이 엿보이는 무속신앙"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제주시내를 관통하는 산지천에는 조선시대에 홍수를 막아달라는 기원을 담은 '조천석'(朝天石)이 세워지기도 했다.
반면 극심한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과거 한라산 백록담을 비롯해 용연, 쇠소깍, 천제연, 수월봉, 원당봉, 대수산봉, 영주산, 산천단 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도 가뭄이 극심해지면 비를 바라는 간절한 농민들의 마음을 담아 기우제를 지내곤 한다.
예로부터 어업을 많이 해왔던 만큼 바람과 풍랑 걱정도 많았다.
제주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른다.
과거 제주인들은 봄이 온 듯 포근하다가 찬 바람이 쌩쌩 불기도 하는 이 시기 날씨의 변화무쌍함은 '바람의 신' 영등신(영등할망)이 다녀가기 때문이라고 여겨왔다.
영등신은 영등날(음력 2월 1일) 바람을 몰고 제주에 와 보름간 섬 곳곳에 곡식과 해산물의 씨를 뿌린 뒤 음력 2월 15일 제주를 떠난다고 한다.
어부들은 영등 기간에 강풍이 불고 풍랑이 거세게 인다며 조업에 나서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등달에는 정말 유독 강하게 바람이 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속설과는 실제와는 차이가 있었다.
기상청이 1992∼2021년 30년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영등달인 음력 2월 평균풍속은 초속 4.4ｍ로 음력 1월(초속 4.6ｍ)보다는 다소 약했고 음력 3월(초속 3.8ｍ)보다는 강했다.
다만 영등날인 음력 2월 1일 평균풍속은 초속 4.6ｍ로, 영등달 평균(초속 4.4ｍ)보다 조금 강해 영등달 중에서도 영등날에 평균 이상으로 바람이 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영등 기간 제주에서는 영등신을 환영하고 송별하며 한해의 풍요와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영등제가 열린다.
제주시 사라봉에 있는 칠머리당에서 열리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1980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됐으며, 2009년 9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됐다.
해상 안전을 기원하는 해신제도 봉행됐다.
조선시대 제주목 해상 관문이었던 화북포구에는 1820년 해신사가 설립돼 제를 지내왔으며, 지금도 제주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해신제가 봉행되고 있다.
◇ 안전관리 대책 점차 체계화…장비·첨단기술 활용해 방재
삶의 지혜와 신앙으로 자연재난을 견뎌왔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안전관리 대책이 점차 체계화되고 있고, 각종 장비와 첨단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2025년 제주도 안전관리계획을 보면 풍수해 관련 기상특보 발효에 따른 주민행동요령과 대피 계획, 인명구조를 위한 현장지휘소 설치·운영, 수재민 응급구호, 방역·방제, 비상 급수와 생필품 공급, 시설물 복구, 기상특보에 따른 해수욕장·올레길 통제 등 분야별 대책이 담겨 있다.
이 밖에도 폭염, 대설·한파, 가뭄, 황사, 고수온 등 자연재해 종류별 관리 대책이 세워져 있다.
또한 여름철에는 폭염 대책, 겨울철에는 한파·대설 대책 기간을 각각 운영한다.
올해 폭염 대책을 보면 극심해지는 무더위에 대비해 예년보다 5일 앞당긴 5월 15일부터 대책 기간을 운영하고, 무더위쉼터도 추가 지정해 600여곳을 운영했다.
지난 15일부터 운영되고 있는 대설·한파 대책으로는 제설 장비 55대와 인력을 전진 배치하고 제설제 9천456t을 확보해뒀으며, 자동염수분사시설 8곳과 도로 열선 8곳을 활용해 결빙 취약 구간을 사전에 관리한다.
한파 쉼터, 버스승차대 방풍 시설, 온열 의자 등 한파 저감 시설도 곳곳에 마련해 운영한다.
도는 또한 올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재난안전문자 내용을 실시간으로 수어 영상으로 변환해 송출하는 재난문자 수어 영상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국지성 집중호우, 폭염, 폭설, 슈퍼태풍 등 극단적 이상기후가 일상화되면서 이에 맞는 대책 마련도 필요해지고 있다.
제주연구원은 지난 4월 기후위기 시대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분야별 적응 전략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자연재난 분야 과제로 극한호우 발생에 대비해 제주의 특성을 반영한 저류지 수문 개방 자동화 시스템 구축, 집중호우를 고려한 도시 침수 위험지역 발굴 및 개선, 극단적 기상현상을 실시간으로 감시·예측하는 시스템 구축, 화산도서 지질 특성을 반영한 제주형 홍수량 산정 연구 등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atoz@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