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보다 의료정책 재점검 우선"…지역·필수의료 위기는 누적된 정책 실패 결과

기사입력 2026-01-10 10:26


"의대 증원보다 의료정책 재점검 우선"…지역·필수의료 위기는 누적된 정책…
지방의 한 국립대학교 의대 전경

[스포츠조선 장종호 기자] 정부가 2027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 안팎에서 의대 증원에 앞서 의료 전달체계와 필수의료 정책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순한 정원 확대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앞서 의사인력수급 추계위원회는 지난 12월 말 공식 브리핑을 통해 2035년에는 1535~4923명, 2040년에는 5074~1만 1136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중장기적인 의사 인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이후 의료 공백과 진료 차질이 이어지면서, 증원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는 해체된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의 구성원이던 충북대 채희복 교수, 강원대 김충효·유윤종 교수, 고려대 박평재 교수, 서울대 방재승 교수 등이 '2027 의대 정원 결정에 앞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10일 발표했다.

◇지역의료·필수의료 위기는 과거 정책 실패가 누적된 결과

이들은 현재의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붕괴는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 정책 실패가 누적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1995년 정부가 '진료 평등권'을 이유로 사실상 진료의뢰 체계를 완화하면서, 1차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수도권 대형병원 진료가 가능해진 것이 그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후 환자들이 중증·경증을 가리지 않고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고착됐고, 지역 병원의 역할은 축소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 교수 5명은 "수도권 대형병원은 더욱 비대해졌고, 경쟁적으로 수도권 분원을 설립하는 반면, 지역에서 2·3차 의료를 담당하던 병원들은 쇠퇴하거나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지역 대도시에서도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인근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없고, 위기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또다시 의대 정원 증원만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접근으로 과연 지역의료와 필수의료가 회복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역 필수의료 전문의 지키는 게 더 시급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증원이 아니라 지역 필수의료 전문의를 지키는 일이라는 주장도 했다.

2024년 의대 증원 정책 이후, 오히려 2026년 지방 국립대병원의 내과·소아과 전공의 지원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는 의대 졸업생 수가 늘어나더라도 근무 여건과 보상 체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필수의료과 기피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필수의료 분야는 장시간 근무와 높은 의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행위별 수가 체계로 인해 병원 경영 부담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증 환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의료인 이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 교수들은 "보건복지부가 진정으로 의료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있다면, 의대 정원 증원에 앞서 중증·응급·바이탈을 책임질 전문의를 어떻게 양성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 해법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요·공급 논리로 의료 자원 결정 안 돼

대한민국 건강보험은 의료기관과 국민 모두에게 강제되는 사회의료보험 체제다.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차등 부과되지만, 의료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제공된다. 이는 시장의 수요·공급 논리보다는 한정된 재정 안에서 의료 자원을 배분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일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미국식 의료제도를 전제로 한 공급 확대 논리가 무비판적으로 적용돼 왔다. 미국은 사보험 중심 체제로 개인의 지불 능력과 선택권이 의료 이용을 결정하지만, 한국은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제도다.

교수들은 "우리 의료제도의 원형을 제공한 일본이 왜 최근 의대 정원 축소까지 논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단순한 증원 논리를 대한민국에 적용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면서 "한국 현실에 맞는 의료 인력 정책은 보다 정교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료보험 유지할 사회적 의지 있는지 검토해야

교수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찬사를 받던 한국 의료제도가 왜 지금 존립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의료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내세우며 의료 접근성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해 왔다. 그 결과 만성질환 환자들이 여러 의료기관을 오가며 잦은 진료와 처치를 반복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 종착점이 의료의 영리화와 미국식 의료제도 도입, 그리고 심각한 의료 양극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수들은 "이는 단기적 정치적 포퓰리즘에 따른 정책 선택의 결과가 결국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는 길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초고령사회에서 사회의료보험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계적 진료의뢰 체계와 지역 주치의제도 등 1차 의료 중심의 진료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거 연금개혁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부와 정치권이 표가 떨어질 수 있는 정책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의지와 역량을 과연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의대 신설·공공의대 설립은 어불성설"

마지막으로 교수들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체감하지 못할지 모르나,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는 이미 붕괴 직전에 와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과 수련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의과대학 신설이나 공공의대 설립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의대 정원 증원 논의에 앞서, 중증·응급·바이탈을 책임질 전문의를 어떻게 양성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또한 실질적인 진료의뢰 체계를 복원해 지역 거점병원에서 중증 질환이 해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이후에야 각 의과대학의 교육 역량과 수련의 질을 점검한 뒤 정원 증원을 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증원된 인력이 필수의료를 담당할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발 단계부터 별도의 트랙으로 관리하고, 전문의 취득 이후에도 해당 지역과 분야에 남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공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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