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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재편되는 세계 에너지 패권과 아랍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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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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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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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는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파장이 크고 복잡한 역사적 사건이다. 훗날 돌아보면 세계 질서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 전환점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단순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감산 통제에 반발해 증산과 수입 증대를 추구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전략적 포석이 깔린 결단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분석은 사우디의 독단적 '오일 카르텔' 지배에 불만을 품은 UAE가 독자 행보에 나서는 동시에 사우디와 이란이 양분한 중동 전체 질서 속에서 전형적 '중견국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OPEC 내 생산량 3위 국가의 탈퇴로 국제시장에서 OPEC 가격 결정력이 약해질 듯하다는 분석 정도가 곁들여진다.

하지만 UAE의 OPEC 탈퇴는 최근 몇 년 새 일어난 국제질서 대변혁의 틀에서 바라보면 다양하고 큰 함의를 갖는다. 우선 이는 아랍권 질서는 물론 글로벌 에너지 패권이 급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은 이미 세계 1위 산유국 지위를 확고히 했고, OPEC 회원국이자 세계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통제권까지 확보한 데 이어 주요 산유국 이란과 전쟁을 통해 원유 생산과 운송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자 주요 에너지 수입국들이 미국과 그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국제질서 흐름을 폭넓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UAE의 충격적인 OPEC 이탈은 이런 지정학적 격변 가운데 나온 전략적 선택이다. 단순한 역내 주도권 다툼이 아니라, UAE가 사우디 주도의 아랍권 결속 체제를 벗어나 미국 주도의 신지정학 질서와 에너지 패권에 스스로 편입되겠다는 독립 선언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특히 미국-이란 전쟁은 걸프 동맹을 버리고 미국과 밀착해야 살 수 있다는 UAE의 판단을 굳히게 했다. 무려 2천 회가 넘는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을 받으며 아랍 형제국들에 공동 대응을 촉구했으나, 끝내 실질적 도움은 없었다. UAE가 절감한 냉혹한 현실은 안보 위기감과 걸프 연대 무용론을 키웠다.

무엇보다 UAE의 행보가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과 글로벌 에너지 영향력 확대 전략의 일부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세계 전략 0순위는 '도전자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일이다. 모든 세부 전략은 이 대원칙 아래에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이 에너지 통제다. 중국은 미국의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돼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했지만, 석유를 수입해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란 구조적 약점을 지녔다. 특히 중국의 공산품 저가 공세가 가능했던 이면에는 미국 제재를 받던 우방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로부터 시장가보다 싸게 원유를 들여와 생산라인을 돌린 비정상 구조가 숨어 있다.

그런데 미국이 올해 들어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을 장악하자 중국은 저가 수입처 한 곳을 잃었고, 이제는 자국 원유 80% 이상을 중국으로 보내던 이란마저 전쟁과 미국의 해상 봉쇄로 거래가 끊길 지경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제조원가 인상으로 이어져 이미 경제위기 경고등이 켜진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결국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장악한 뒤에 이란을 공격하고 UAE를 OPEC에서 끌어낸 일련의 과정은 중국의 우군을 차례로 제거함과 동시에, 중국의 '저가 에너지 생산 기반'을 해체하려는 에너지 포위망 구축으로 볼 수 있다.

OPEC 탈퇴를 비롯한 UAE의 새 국가 전략은 미국의 이해와 잘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심지어 UAE의 행보는 아랍권 최대 친미 국가란 정체성보다 더 과감해지고 있다. 중동에서 이슬람 세력의 공적(公敵) 취급마저 받았던 이스라엘과도 급속도로 밀착 중이어서다. 최근엔 이스라엘이 UAE의 요청에 부응해 자국 핵심 방공망인 '아이언돔'을 배치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경제 협력을 넘어 안보·국방 분야에서도 밀월 관계에 들어선 것이다. 미국과 비공식 통화 스와프 협상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안정을 지속하려면 아랍 형제국보다 이교도인 이스라엘, 미국과 손잡는 게 낫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UAE까지 힘을 보태면서 미국의 '오일 파워'는 더욱 커졌다. 특히 OPEC 내에서 시장 상황에 맞춰 적시에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윙 프로듀서'가 사우디를 빼면 UAE 정도였다는 점에서 OPEC의 유가 통제력은 더 빨리 약해질 수 있다. 이대로 가면 회원국 연쇄 탈퇴로 인해 OPEC 자체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벌써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국 영향권에 있는 이라크, 카자흐스탄, 베네수엘라 등이 이미 탈퇴 후보로 꼽힌다. OPEC 카르텔이 힘을 잃고 미국 중심 석유 카르텔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는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게 됐다. 관계 당국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며 발 빠르게 대비해야 한다.

UAE가 중동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긴밀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UAE의 이 같은 급격한 변화는 우리의 향후 외교 전략과 행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UAE는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로 초대형 방산·투자 협력을 진행 중인 데다, 최근 양국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까지 발효됐다. 이는 우리가 아랍권 국가와 맺은 최초의 자유무역협정 격이다. 공교롭게도 한-UAE CEPA가 공식 발효된 날짜가 바로 UAE가 OPEC을 탈퇴한 날이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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