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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시간' 모두에게 열린 '대구', 삼대가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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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는 충의공 엄흥도의 묘가 있다. 엄흥도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룬 인물로, 세조가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을 피해 군위에서 은신했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사진제공=지엔씨21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는 충의공 엄흥도의 묘가 있다. 엄흥도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룬 인물로, 세조가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을 피해 군위에서 은신했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사진제공=지엔씨21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은 여행의 욕구를 자극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지금, 무더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쌓였던 불필요한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고, 지적 호기심에 대한 즐거움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역사와 예술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삼대(三代)가 함께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익숙한 이름 뒤 마주한 낯선 공간들. 비움과 채움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곳, 대구다.

◇군귀군 화본리의 엄흥도 묘소 주변에는 역사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사진=김세형
◇군귀군 화본리의 엄흥도 묘소 주변에는 역사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사진=김세형

왕사남은 끝났지만, 스토리는 계속된다

대구광역시 군위군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곳이 아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북부 외곽에 위치한 인구 2만3000명의 작은 지역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2시간가량 KTX를 타고 도착한 동대구역에서 차로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으니 사실상 미지의 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군위군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역사와 예술이 공존한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고,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수려한 자연경관이 함께 어우러진 곳으로 남녀노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기도 하다. 군위군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역할이 컸다. 대구광역시는 '충절의 길, 역사기행-왕과 함께한 사람들'이란 시티투어를 기획해 선보였고, 사육신부터 엄흥도 후손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충의공 왕사남의 숨은 뒷이야기는 대구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엄흥도 묘소는 영월엄씨 군위군 문중 후손들이 관리를 하고 있고, 어르신들도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사진=김세형
◇엄흥도 묘소는 영월엄씨 군위군 문중 후손들이 관리를 하고 있고, 어르신들도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사진=김세형

군귀군 화본리의 엄흥도 묘소 주변에는 역사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묘소~전망 쉼터~육각정자'로 이어지는 숲길은 산책을 하기 좋다. 묘소까지는 계단으로 3분이면 닿는다. 엄흥도 묘소는 영월엄씨 군위군 문중 후손들이 관리를 하고 있고, 어르신들도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왕과 함께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대구의 또 다른 지역은 달성군 하빈면이다. 이곳에는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육신사가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왕과 함께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대구의 또 다른 지역은 달성군 하빈면이다. 이곳에는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육신사가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왕과 함께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대구의 또 다른 지역은 달성군 하빈면이다. 하빈면에는 묘골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고, 이곳에 육신사가 있다. 묘골은 순천 박씨의 집성촌이다.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중 박팽년의 후손이 현재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육신사는 순천 박씨 문중에서 당초 박팽년의 위패만 모셨지만, 후손인 박계창이 박팽년 기일에 나머지 5명의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 추가로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제공=지엔씨21
◇육신사는 순천 박씨 문중에서 당초 박팽년의 위패만 모셨지만, 후손인 박계창이 박팽년 기일에 나머지 5명의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 추가로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제공=지엔씨21

육신사는 순천 박씨 문중에서 당초 박팽년의 위패만 모셨지만, 후손인 박계창이 박팽년 기일에 나머지 5명의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 추가로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육신사의 전신인 낙빈사를 지어 제향해 오다가 1691년(숙종 17) 낙빈서원을 건립해 제사를 지냈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됐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됐다. 이후 1974년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사당을 재건했다. 육신사가 있는 묘골은 숨겨진 이야기와 함께 잘 가꿔진 한옥의 멋스러움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사유원은 군위군에 있는 복합 문화 정원이다. 자연과 건축, 예술, 미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사유원은 군위군에 있는 복합 문화 정원이다. 자연과 건축, 예술, 미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매력적인 공간' 사색의 시간, 예술의 여운

대구는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품고 있다. 많은 곳이 있겠지만, 사유원과 간송미술관을 우선 추천한다. 익숙한 지역에 들어선 낯선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들이다. 게다가 그동안 잊고 있던 예술적 감성과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적 감정을 보다 정갈하게 정돈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사유원은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가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사유원은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가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사유원은 군위군에 있는 복합 문화 정원이다. 자연과 건축, 예술, 미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거대한 수목원으로서 각각 테마를 갖춘 여러 개의 정원이 모여 하나를 이뤘다. 사유원은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가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마음을 빚은 석상, 아름다운 건축물은 고요한 사색을 돕는다. 300년 이상의 모과나무가 있는 '풍설기천년', 배롱나무 정원인 '별유동천' 등 9개의 주제 정원이 있다. 정영선, 박승진, 카와기시 마츠노부 등 국내외 정상급 조경가들이 참여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사유원을 즐기는 방법은 여럿이 있다. 자유롭게 거닐며 잘 가꿔진 수목원과 건축물 사이를 오가며 즐기는 방법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이야기와 함께하는 도슨트 투어가 있다. 도슨트 투어는 고가이지만, 사유원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이들에겐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사유원의 화장실 '다블유씨'. 사유원의 화장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각각의 공간은 하나의 예술 작품인 동시에 화장실이란 폐쇄적 공간을 하나의 건축예술로 승화시킨다. 사진=김세형
◇사유원의 화장실 '다블유씨'. 사유원의 화장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각각의 공간은 하나의 예술 작품인 동시에 화장실이란 폐쇄적 공간을 하나의 건축예술로 승화시킨다. 사진=김세형

사유원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따라 이동한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귀락와', '축소', '망아정', '다불유시' 저마다 다른 이름과 의미를 갖고 있다. 각각의 공간은 하나의 예술 작품인 동시에 화장실이란 폐쇄적 공간을 하나의 건축예술로 승화시킨다. 익숙한 동시에 외면받은 공간의 변신. 새로움으로 나를 채우는 자극제인 동시에 시간이 지나며 자신도 모르게 닫힌 생각의 틀을 조금씩 허무는 특별한 경험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대구의 신상 문화관광지다. 2024년 문을 연 간간송미술문화재단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이다. 사진제공=지엔씨21
◇대구간송미술관은 대구의 신상 문화관광지다. 2024년 문을 연 간간송미술문화재단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이다. 사진제공=지엔씨21

대구간송미술관은 소위 말해 대구의 신상 문화관광지다. 2024년 문을 연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이다. 우선 외관부터가 인상적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의 건축은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과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대구대공원의 경사와 지형이 안동 도산서원과 비슷하다는 점을 착안해 한국 전통 건축 요소인 계단식 기단, 터의 분절 등을 접목했다. 자연과 소통하는 유연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관의 안과 밖을 지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했다.

◇간송미술관에서는 7월 5일까지 '추사의 그림 수업' 기획전을 진행한다. 지난 2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70대 후반에 그린 작품으로 문인의 이상과 철학을 담아낸 문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사진제공=지엔씨2
◇간송미술관에서는 7월 5일까지 '추사의 그림 수업' 기획전을 진행한다. 지난 2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70대 후반에 그린 작품으로 문인의 이상과 철학을 담아낸 문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사진제공=지엔씨2

간송미술관에서는 7월 5일까지 '추사의 그림 수업' 기획전을 진행한다.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들의 글과 그림 작품을 볼 수 있다. 지난 2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70대 후반에 그린 작품으로 문인의 이상과 철학을 담아낸 문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추사의 다양한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게 간송미술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랑 간송미술관 학예사는 "'추사의 그림 수업'은 추사의 다양한 그림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추사의 그림 수업' 기획전 외에도 조선시대 화가들이 바라본 여름 풍경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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