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 장마철이 시작된 가운데 산불 진화와 산림 관리를 위해 닦아놓은 임도(林道)가 집중호우 때마다 산사태를 유발하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입지 선정과 설계·시공, 소홀한 사후 관리 등이 산사태 위험을 키우는 구조적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임도 조성 주체인 산림청은 극한강우가 임도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서도 임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과 설계 기준 강화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 깎고, 쌓으며 무너진 평형…빗물 모으는 '깔때기' 된 임도
산림청은 산불 대응, 산림 보호, 병해충 방제 등 산림 관리를 위해 임도를 개설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임도가 산사태 등 재해 위험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국립공원공단이 발행한 '국립공원 재난관리를 위한 임도의 영향 분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공단이 2011년부터 10년간 전국 16개 시도 산사태 발생지 총 9천656곳의 시점부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산사태의 15%(1천447곳)가 임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연적 요인이 아닌 인위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산사태 중에서는 임도에서 시작된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같은 산에 같은 비가 내렸는데 왜 임도가 있던 곳에서만 산사태가 나고 그 주변은 멀쩡한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며 "산사태는 자연적인 요인도 분명히 있지만, 임도를 조성하거나 벌목한 곳 등 사람이 건드린 곳에서 비롯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산사태 전문가들은 임도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고(절토) 흙을 쌓아 평탄면을 만드는(성토) 과정에서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의 자연 평형이 무너져 산사태 위험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절토면에서는 사면의 경사각이 자연 상태보다 급해져 안정성이 떨어진다. 또 성토면에서는 자연 지반에 비해 토사 간 결합력이 약해져 폭우 시 빗물을 머금은 느슨한 토사에서부터 붕괴가 시작될 위험성이 커지는 셈이다.
또 임도가 일종의 '인공 수로'의 역할을 하면서 막대한 양의 물이 임도를 따라 흐르다가 배수관 능력을 초과하거나 굴곡진 지점에 이르러 특정 사면에 집중적으로 분출되면서 산사태가 촉발되기도 한다.
결국 인공적으로 만든 임도가 빗물을 한데 모으는 일종의 '깔때기' 역할을 하며 산사태를 촉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지형·지질 무시한 '주먹구구식' 공사가 원인…사후 관리도 방치"
산사태 전문가들은 임도가 폭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지형·지질에 맞는 토목공사가 이뤄지고 일반 도로·철도에 준하는 배수 시설 등이 마련돼야 하지만, '일단 개설하고 보자' 식의 무분별하고 부실한 개설이 재난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이 전 교수는 "개발로 인해 산에 생긴 절리, 단층에 따라 산사태 여부와 양상 등이 달라질 수 있다"며 "임도 개발 전부터 지질학·지형학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전문 기술 인력을 투입하는 단계부터 예산 문제에 부딪히다 보니 결국 주먹구구식 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수년간 산사태 지역에서 현장 조사를 이어오고 있는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도 "임도를 위한 임도가 만들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임도에 대한 타당성·안전성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산람청은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자연재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며 "원인을 자연재해로만 해석한 탓에 수많은 사람이 임도 산사태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어도 보상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임도 개설 이후 보수·관리가 소홀한 점도 산사태 위험성을 높인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보고서를 통해 임도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2차 재난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사태 예방의 기본인 성토사면과 절개지 등 관리를 비롯해 배수 체계의 측구와 배수관 정비 등이 부실한 현장이 곳곳에서 확인된다"며 "기존 임도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림 당국은 임도 신설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의 임도 설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만7천675㎞에 이른다.
임도는 전국에서 2024년과 2025년 각각 567㎞와 791㎞가 새로 개설됐고, 올해 488㎞가 더 생긴다. 내년에도 326㎞가 신설될 예정이다.
◇ 해결책은?…"임도 인접지 집중 관리하고 설계기준 강화해야"
집중호우 때마다 임도 산사태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우려되면서 전문가들은 여러 해법을 내놓고 있다.
이 전 교수는 "대부분의 산사태가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잘 관리만 하면 피해를 막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임도 아래 민가 주변에 콘크리트 보호벽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전국 대부분의 산사태 현장에서 토사가 쓸려 벗겨진 나무껍질의 높이가 1m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이 전 교수는 "일본은 화산 폭발이 많아서 산에서 돌 위에 쌓인 흙이 매우 두껍지만 우리나라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산에 쌓인 흙의 높이가 1m 안팎에 그친다는 사실을 현장 조사를 통해 발견했다"며 "민가 주변에 높이 1m 이상의 보호벽을 만들면 당구의 '스리쿠션' 원리처럼 토사가 벽에 맞고 옆으로 빠지기 때문에 민가로 토사가 들이닥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임도의 모든 구간을 완벽히 조성할 수 없다면 민가 인근에 개설하는 임도 구간이라도 탄탄하게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산사태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위험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국립공원공단은 보고서를 통해 "임도 인접 지역을 산사태 중점 관리구역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임도 주변 일정 범위를 관리 대상 구역으로 지정하고 배수로 정비, 사면 안정화, 식생 복원 등 구조적·비구조적 대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맞는 임도 개설에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 위원은 "최근 10년 사이 기후변화로 장마철 강우 패턴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과거 설계 기준으로 임도를 조성한다면 재난 위험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게 뻔한 상황"이라며 설계 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 인근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임도가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강우"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다만 임도 산사태와 관련한 여러 논란과 산의 형질 변형으로 인한 위험성 증가 등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지난 4월 '임도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임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만큼 임도 개설 전 타당성 평가, 사후 관리 등이 더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 늘리기에 치중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임도 신설 물량을 줄이고 안전성, 품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토목·환경 전문가 등을 투입해 임도 설계 전 타당성 조사를 철저히 시행하고 극한호우에 대비해 배수로 설계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또 기존 사방사업 외에 지난 2월부터 지자체와 29개 지점을 선정해 토석류 방호벽 설치 시범 사업을 시행하는 등 민가 피해 최소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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