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인터뷰]'현정화 애제자'1987년생 서효원"나도 고다이라 나오처럼..."

기사입력 2018-12-26 05:20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고다이라 나오도 서른 살 이후에 더 많은 훈련을 했다고 들었어요."

지난 23일, 제72회 파나소닉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여자단식 결승전을 앞두고 '1987년생 탁구 에이스' 서효원(31·한국마사회)은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 나오(32) 이야기를 꺼냈다. 2011년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대회에서 7년만의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아테네올림픽 챔피언' 유승민 IOC위원의 조언을 마음 깊이 새겼다. "고다이라 선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나이 들면서 훈련양을 더 늘렸다고, 탁구를 더 오래, 더 잘하고 싶다면, 절대 체력을 아끼면 안된다. 더 하고 싶으면, 한발 더 뛰어야 한다고…." 그렇게 독한 각오로 종합탁구선수권을 준비했다.

서효원의 오랜 스승, '탁구여제' 현정화 한국마사회 총감독이 결승전을 앞두고 귀띔했다. "효원이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요. 잘할 겁니다. 기대하고 있어요."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백전노장' 현 감독의 예감은 현실이 됐다. 결승에서 서효원이 '디펜딩 챔프' 전지희(26·포스코에너지)를 4대2(5-11, 13-15, 11-9, 11-5, 11-7,11-5)로 꺾고 우승을 확정짓던 순간, 사제는 따뜻하게 포옹했다.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은 16강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4세 탁구신동' 신유빈(수원 청명중)을 마주했다. 1-2세트를 내리 내주며 흔들렸다. 서효원은 "너무 떨렸다. 처음엔 유빈이와의 맞대결을 잘 준비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들어갔다. 그런데 6-2로 이기다 네트포인트를 내준 후 긴장감이 몰려왔다. 선발전 때도 0-2로 지다가 뒤집은 기억이 있었다. '지지 않는다, 이긴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차분히 풀어갔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결국 내리 4세트를 따내며 4대2로 역전승했다. 이후 승승장구였다. 8강, 4강에서 유은총, 김별님(이상 포스코에너지)을 잇달아 4대0으로 돌려세웠다. 결승전, 최근 전적에서 불리했던 전지희를 상대로 2세트를 먼저 내준 후 또다시 4대2 역전승에 성공했다. 수비 커트는 묵직해졌고, 공격 드라이브엔 날이 섰다. 나비처럼 깎아내려 벌처럼 쏘는, 그녀의 공격형 수비 탁구가 눈부시게 빛났다. 서효원은 "유빈이와 어려운 경기를 한 후 컨디션이 살아났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탁구얼짱' 서효원은 늘 웃는 낯이다. 이길 때나 질 때나 표정을 쓰지 않는다. 욕심 없어보이던 그녀의 선한 눈빛이 달라졌다. 2011년 첫 우승이 어느날 선물처럼 찾아왔다면 7년만의 두 번째 우승은 절실했다. 서효원은 "서른을 넘기면서 모든 대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게 됐다. 간절해졌다"고 털어놨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에이스는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잘하게 된 선수다. 이 정도 올라온 것도 잘한 거라고 쉽게 만족했었다"며 과거를 돌아봤다. "2011년 종합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하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를 나가면서 책임감이 커졌다. 이 정도로는 안된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라면 더 잘해야 한다.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이번 우승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고다이라의 '기록 역주행'을 가슴 깊이 새긴 건 이 때문이다. "탁구를 오래 하려면 몸 관리, 체력 관리를 스스로 해야 한다. 나이가 있다고 덜해서는 안된다.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심히 하다보니 컨디션도 올라오더라. 정신, 체력, 기술이 함께 올라왔다. 내년 1월 세계선수권 선발전과 도쿄올림픽 티켓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자존심' 현정화의 제자로서 '수비 에이스' 서효원이 7년만에 되찾아온 우승은 의미 있다. 전지희, 최효주 등 중국 귀화 에이스가 지난 3년간 독식한 여자단식 우승컵을 가져왔다. 애제자의 쾌거를 누구보다 기뻐한 건 종합대회 4회 우승(1985,1988, 1990, 1991년)의 '레전드' 현 감독이다. "귀화선수들이 잘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는 것은 속상하다. 우리도 집요하게 파고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효원이에게 늘 '네가 최고다' '네가 잘해야 된다'고 말한다. '한국 여자탁구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1988 서울올림픽 챔피언' 현 감독의 눈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향해 있다. 서효원 탁구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역설했다. "탁구에서 수비 선수가 1등 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효원이는 가능하다. 수비 전형이지만 공격이 어마무시하다. 제가 봐도 무섭다. 상대방으로서는 쫓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브에 이은 공격이 뛰어나고, 공격 패턴도 다양하다. 롱 커트를 하다 반격을 하고 상대 드라이브를 맞받아친다. 이런 여자 수비수는 없다. 백핸드 기술, 때리는 기술 등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 체력 관리를 잘하고 공격을 더 강화하면 경쟁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현 감독은 9년째 동고동락한 제자 서효원의 꾸준한 노력과 성장을 칭찬했다. "이번 대회처럼 묵직한 커트는 나도 처음 봤다. 저 키(1m59)로 저런 수비, 저런 공격을 한다는 것이 놀랍다. 타고난 순발력 덕분이다. 무엇보다 효원이는 꾸준하고 성실하다. 꾸준함도 재능이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을 갖췄다."
제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남북교류 특별페이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