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평창올림픽기념관엔 '패럴림픽'이 없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1-03-09 16:05


한국 평창올림픽기념관(위)과 미국 올림픽 패럴림픽 뮤지엄. 무엇이 다른지 찾으셨나요.

정확히 3년 전인 2018년 3월 9일 평창동계패럴림픽이 개막했다.

'패럴림픽의 성공이 올림픽의 완성'이라는 신념 속에 '하나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패럴림픽 현장에서 열흘간 뜨거운 감동과 기적의 기록을 써내렸다. 초중고 학생들이 장애인아이스하키, 장애인컬링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국민적 응원 속에 '철인' 신의현은 노르딕스키에서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정숙 영부인은 대회 기간 내내 평창 눈밭에서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고, 장애인아이스하키가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순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선수들은 얼음판 위에서 애국가를 열청하며 눈물을 쏟았다.



평창의 성공 직후 강원도는 IOC 잉여금 25억원과 도비 25억원을 재원으로 그날의 감동을 영원히 남기고 기릴, 레거시 사업 '기념관' 설립을 의결했다. 개폐회식이 열렸던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로 220에 지난 2월 7일 '평창올림픽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3년 전 역사의 현장에서 혼신의 레이스 후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렸던 장애인체육인들이 물었다. "그런데, 패럴림픽은 어디로 갔죠?"

지난해 8월 14일 통과한 조례에 제정된 공식명칭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기념관'. 그러나 박물관 현판은 'POM''평창올림픽기념관'으로 새겨졌다. '패럴림픽' 글자가 사라졌다.

과정은 이렇다. 2019년 3월 27일 기념관 구성, 운영, 계획을 수립할, 강원도 예술, 문화 인사 중심의 자문위원회가 꾸려졌다. 7월 1일 첫 자문위원회가 열렸고, 기념관의 약칭은 '올림픽'이라는 문구를 넣어 심플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기로 했다. 2019년 7월 26일~8월 2일, 도청 직원들이 명칭 관련 설문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글 약칭 '평창올림픽기념관', 영어 약칭 'POM(Pyeongchang Olympic Museum)'이 결정됐다. '심플하고 간결하게' 가다 보니 '패럴림픽'이 빠졌다. 공간의 제약이 없는 홈페이지마저도 '패럴림픽'이라는 타이틀은 찾아볼 수 없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항목 아래 부속품처럼 '패럴림픽'이 달려 있다.

2018년 당시 정부도, 언론도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을 당연스레 병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패럴림픽 중계시간 부족을 지적했고, 지상파 3사는 편성을 급히 늘렸다.

9일 장애인체육 관계자는 "'평창올림픽기념관'이라는 명칭은 평창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우리 사회에 여전한 장애인, 장애인체육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동등하다. 패럴림픽은 올림픽에 포함되는 개념이 아니며, 올림픽이 패럴림픽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달 7일 국무총리가 참석한 기념관 개관식을 보고서야 '패럴림픽'이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명칭 결재 과정에서 강원도 ,정부 관계자 누구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평창의 성공을 함께 이끈 장애인 체육인들의 땀은 어디로 갔나"라고 반문했다. "지금이라도 '평창올림픽·패럴림픽 기념관' 혹은 2018평창기념재단처럼 '2018평창(평창2018)기념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2025 패럴림픽 이모티콘
평등과 공정의 이슈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 공통의 시대정신이다.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설립된 기념박물관의 명칭은 당연히 '올림픽·패럴림픽 뮤지엄'이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운동은 평등 이슈에 더욱 세심하게 다가서고 있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IOC는 "사상 최초의 양성평등한 올림픽"을 선언했다. 206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남녀 선수가 각각 1명 이상 출전해야 한다. 2024년 파리하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이하 파리2024 조직위)는 사상 최초로 올림픽, 패럴림픽에 동일한 엠블럼을 채택,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동일한 위상을 형상화했다. 파리2024(PARIS2024)가 새겨진 같은 엠블럼에 각각 IOC의 상징, 오륜마크와 IPC의 상징, 아지토스 마크가 붙었다. 시각축구, 휠체어테니스 등 패럴림픽 이모티콘엔 다양한 피부색의 선수들이 담겼다. 성별, 인종, 장애에 관계없이 누구나 함께하는 올림픽이라는 뜻이 직관적으로 전해진다. 파리2024 조직위측은 "올림픽만큼 패럴림픽을 중요하게 다루겠다는 우리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3년 전 평창에서 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는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못지않게 인기가 폭발했다. 패럴림픽 레거시로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반다비체육관 150개도 건립중이고, 250만 장애인을 위한 체육 예산(2021년 790억원)도 매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평창기념재단은 패럴림픽 3주년을 기념해 9~11일 '평창장애포럼'을 개최중이다. 국내외 인사들이 '장애포괄적 사회 발전(Disability-Inclusive Development)'을 주제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역설한다.

'예전과는 다르다, 많이 달라졌다' 생각했는데 '다시 제자리'일 때의 실망감과 열패감은 당혹스럽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 더디 가도 함께 가는 세상을 믿고 꿈꾸던 이들에게 '패럴림픽'을 '심플하게' 싹둑 잘라낸, '시대역행적' 용감한 네이밍이 더 불가해한 이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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