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스포츠계 히딩크' 이달순씨의 40년 비인기종목 살리기

기사입력 2013-02-21 18:27


이달순 헬로스포츠 발행인. 김진회 기자

'아마추어 스포츠계의 히딩크'란 수식어가 적합할 듯하다.

주인공은 40년을 비인기 종목 살리기에 전념한 이달순씨(77)다. 이씨는 정치학 박사다. 한국최초의 여기자 최은희씨(1904~1984)의 장남이다. 중앙대 정치학과 교수와 수원대 총장을 지냈다. 이씨가 스포츠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52년 양정고 2학년 때다. 어릴 때 폐결핵을 앓았지만 양정고에 입학한 뒤 농구선수로 활약했다. 당시 송구(현 핸드볼) 선수로도 뛰었다. 스포츠계와의 끈은 계속 이어졌다. 중앙대 시절 중앙체육회 창단 임원으로 축구부 창단과 '이명신 총장배 전국 국민 중고등 축구대회' 창설에 기여했다. 중앙대 농구부도 상위권으로 끌어 올린 이씨는 사이클 팀을 창단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이 때 비인기 종목의 비애를 느꼈다. 이씨는 "사이클 팀을 국내에서 가장 강한 팀으로 만들었는데 국제대회는 나가보지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간 국제대회에선 세계의 벽에 부딪혔다"고 회상했다.

1979년 중앙대 정치학 박사가 된 이씨는 동시에 대한 싸이클 경기연맹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씨는 "애초부터 프로종목에는 관심이 없었다. 40년 전 내가 스포츠계에서 활동할 때 인기와 비인기 종목으로 나누는 기준이 관중수였다. 나는 비인기 종목의 관중수를 인기 종목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1989년 한국 대학 농구연맹 회장도 맡은 이씨는 프로로 전향된 종목과 아마추어로 남은 종목 사이에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더 강한 사명감을 가졌다. 이씨는 "프로 선수들은 돈도 벌고 명예도 얻는다. 반면, 아마추어 선수는 명예 뿐이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국가의 품격을 올리는데도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최소한 이들의 명예라도 지켜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들,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타는 애국심으로 대형사고를 친 경험도 있다. 이씨가 1993년 폴란드 하계유니버시아드 선수단장일 때 얘기다. 한국 농구대표팀이 유고슬라비아와 4강전을 펼쳤다.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경기 종료 직전 리드를 잡았는데 폴란드 출신 심판때문에 승부가 뒤집혔다. 너무 화가나 경기장에 난입해 심판을 때릴 뻔했다. 이씨는 "한국에 도착하니 내 얘기가 큰 이슈로 떠올랐더라. 당시 나를 국제대회에 보내지 말라는 얘기까지 나왔다"며 웃었다.

이씨는 자신의 기백이 기자 출신인 모친의 정신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씨는 "나는 창조·개척 정신이 강하다. 기자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영향은 1970년대 동남아·아시아 사이클 대회 유치와 1980년대 '이상백배 한-일 남녀 대학농구 친선경기' 창설의 밑거름이 됐다"고 전했다.

3년 전부터는 아마추어스포츠전문 인터넷미디어 헬로스포츠 발행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씨의 '비인기 종목 살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21일에 헬로스포츠가 주관하는 '제1회 헬로스포츠 아마추어스포츠대상 황금별상'이 열렸다. 이 시상식은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한 단체들을 격려, 시상하는 행사다. 이날 삼성스포츠단(기업 부문), 최태원 핸드볼협회장(대한체육회가맹경기단체 부문), 수원시청(지방자치단체 부문), 축구(대한장애인체육회가맹단체 부문), 축국-생활체조-배드민턴-테니스(국민생활체육회전국종목별연합회 부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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