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대전, 그들이 '레전드'를 보내는 법

기사입력 2016-06-23 21:16


사진제공=대전 시티즌

김은중(37)은 원클럽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십수년간 뛴 것도 아니었다. 그가 대전에 머문 것은 단 8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바로 김은중이다.

김은중은 가장 힘들때 대전을 지켰던 선수다. 1997년 대전의 창단 멤버로 입단해 2004년까지 뛰었다. 444경기에서 123골-56도움을 올리며 국내 최정상급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최약체 대전의 유일한 믿을맨이었다. 2001년에는 기적과 같은 FA컵 우승을, 2003년에는 홈관중 1위를 이끌었다. 하지만 김은중은 재정난에 시달리던 대전을 떠나야 했다. 이후 베갈타 센다이(일본), 서울, 창사(중국), 강원, 포항 등을 거쳤다.

선수생활의 종착역을 향하던 2014년, 그의 마지막은 역시 대전이었다. 강등한 옛 소속팀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2부리그에서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김은중은 주저 없이 대전을 택했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후배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잡았다. 김은중의 숨겨진 공로 속 대전은 1년만에 클래식에 복귀했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김은중은 미련 없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은중은 은퇴식을 갖지 못했다. 김은중은 은퇴 후 곧바로 AFC투비즈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대전은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지난해 6월 은퇴기념 경기를 확정지었지만 메르스로 인해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보냈다. 하지만 대전이 보유한 2개의 트로피를 함께 한 유일한 멤버, 김은중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대전은 다시 한번 투비즈와의 친선경기를 추진했고, 마침내 3월 재개최가 확정되었다. 김은중의 은퇴경기는 24일 오후 7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대전은 이번 은퇴식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일단 김은중을 위해 시계를 1998년으로 돌렸다. 1998년은 김은중이 19세 이하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그때다. 1998년 버전 유니폼을 새롭게 발매했다. 팬들도 움직였다. 1997장만 한정 판매된 김은중 은퇴 기념 레트로 유니폼은 성원 끝에 완판됐다. 이 밖에 김은중의 팬클럽인 샤프와 함께 식전 행사를 준비하고, 김은중의 뒤를 이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황인범이 꽃다발을 전달한다. 대전은 다양한 행사로 김은중 은퇴식을 성대한 축제로 만들 계획이다.

김은중은 후반 5분 모습을 드러낼 계획이다. 그가 달던 18번은 이번 경기를 끝으로 18년 동안 결번된다. 23일 레트로 유니폼을 입고 미디어데이에 나선 김은중은 "은퇴식을 성대하게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뜻 깊은 자리이기도 하지만 K리그 레전드를 위한 모범적인 은퇴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은퇴식이 K리그 후배들에게 '팀에 헌신하면 좋은 기회가 마련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팀에 헌신한 선수를 위해 다른 구단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것이 선수로서의 바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의리의 대전, 자발적으로 나선 팬들이 뭉쳐 2년만에 성사된 이번 은퇴식은 김은중의 바람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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