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태릉연습벌레'정영식의 불꽃승부 "울지마, 넌 감동이었어"

기사입력 2016-08-09 08:48


8일 오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에 출전한 정영식이 세계 1위 중국 마롱과 경기를 펼쳤다. 정영식은 2-4로 패했다./2016.8.8/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8일 오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에 출전한 정영식이 세계 1위 중국 마롱과 경기를 펼쳤다. 정영식은 2-4로 패했다./2016.8.8/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8일 오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에 출전한 정영식이 세계 1위 중국 마롱과 경기를 펼쳤다. 정영식은 2-4로 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정영식이 눈물을 닦고있다./2016.8.8/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8일 오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에 출전한 정영식이 세계 1위 중국 마롱과 경기를 펼쳤다. 정영식은 2-4로 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정영식이 눈물을 흘리고있다./2016.8.8/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첫 2세트를 잡아냈다. 마지막 2세트는 듀스 대접전이었다. 비록 패했지만 보기드문 명승부였다. '절대 1강' 중국의 '절대 1강' 마롱을 상대로 이렇게 팽팽한 경기를 펼친 선수가 있었던가.

정영식(24·미래에셋대우·세계랭킹 12위)은 9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로 파빌리온3에서 펼쳐진 리우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4라운드(16강)에서 마롱에게 세트스코어 2대4(11-6 12-10 5-11 1-11 11-13 11-13)로 석패했다. 1세트를 11-6, 2세트를 12-10으로 내리 따냈다. 이후 3세트를 내리 내주며 몰렸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6세트 9-4까지 앞서며 다시 승리의 불씨를 살렸지만 결국 11-13으로 역전패한 후 정영식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철승 남자대표팀 코치가 위로를 건넸지만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만리장성을 뛰어넘을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서 놓친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정영식은 '테크니션' 김택수 대우증권 감독의 애제자이자 자타공인 국내랭킹 1위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웬만해선 1위를 놓치지 않는 '절대 에이스'다. 리시브가 좋고 연결력이 뛰어나다. 허투루 버리는 공이 없다. 국내랭킹 1위, 전국체전, 남녀종별탁구선수권, 남녀종합탁구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에서 선후배들을 줄줄이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특별한 노력과 탁월한 성적은 종종 폄하됐다. '국내용'이라는 달갑잖은 꼬리표가 자주 따라붙었다. 강력한 포어드라이브나 화려한 선제 공격보다는 지구전, 연결, 랠리에 능한 온건한 탁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영식은 주위의 평가에 좌절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력했다. "주변의 평가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차라리 받아들이고 나니 맘이 편해졌다"고 했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처음엔 인정이 잘 안됐다. 재능이 더 뛰어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 없지'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비판을 속상해하기보다 먼저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똑같이, 하던 대로 신경쓰지 말고 더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노력을 더했는지도 모른다."

정영식은 단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고, 진심을 다해 고치려 애썼다. 보다 공격적으로 도전했고, 끊임없이 드라이브를 연마했다. 더 강해지기 위해 지난 6년간 부단히 노력해왔다. 정영식은 함께 첫 올림픽에 나선 선배 이상수와 함께 소문난 '태릉 연습벌레'다. 탁구장의 불을 켜고, 끄는 선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정영식은 지난해 6월 필리핀오픈 단식 준우승에 이어 호주오픈 탁구에서 첫 단식 정상에 섰다. 지난해 7월엔 코리아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선배 주세혁을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30위권을 맴돌던 세계랭킹은 지난해 20위권 이내로 진입했고, 리우올림픽의 해인 올해 2월,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랭킹 13위, 3월엔 14위를 찍었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 세계 1위 마롱과의 대결에서 첫 2세트를 따내고, 마지막까지 듀스 접전을 펼친 투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눈물 겨운 자신과의 싸움의 결과다.


정영식은 스스로 '집착'이라고 할 만큼 탁구를 사랑하는 선수다. 탁구선수를 꿈꿨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살 때부터 라켓을 잡았다. 의정부초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동급 최강'이었다.

만18세 되던 2010년 첫 출전한 로테르담세계선수권에서 남자복식 동메달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단체전 세계선수권에 매년 출전했다. 수년간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2014년 정영식의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 탈락은 이변이었다. 시련 이후 정영식은 더 강인해졌다. "한달 정도 울었다. 예전에는 '노력하면 다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떨어진 후 '안되겠다. 올림픽이 2년 남았는데 이렇게 하면 못나갈 수도 있겠다. 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를 모르는 연습벌레' 정영식의 멘토는 '스승' 김택수 대우증권 감독이다. 김 감독은 일찌감치 정영식에게 '이기는 습관'을 주입시켰다. 날선 감각을 타고난 김민석(KGC인삼공사), 왼손 에이스 서현덕(삼성생명) 등 또래 라이벌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는 법을 단련시켰다. 김 감독은 "추천전형은 꿈도 꾸지 마라. 너는 선발전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영식은 김 감독에 대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분들이 (김)민석, (서)현덕이와 저를 '재능'으로 비교할 때도 감독님은 늘 '결국엔 네가 제일 잘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감독님의 믿음이 내겐 가장 큰 힘이다. 감독님은 내 정신적인 멘토다."

정영식의 롤모델은 고등학교 때 이후 줄곧 공링후이다. '불세출의 그랜드슬래머' 공링후이의 안정적인 '외유내강' 탁구는 정영식 탁구의 교본이다. "나는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세트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자신 있다"고 했다.

정영식은 지난 3월 주전으로 나선 첫 콸라룸푸르세계선수권, 선배 주세혁, 이상수와 함께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리우에서도 메달을 목표 삼고 있다. 침체된 탁구계에서 선배 유승민의 계보를 잇는 올림픽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놓친 적이 없다. "김연아, 박태환 선수는 모두가 다 안 된다고 했을 때 그걸 이겨낸 사람이다. 그래서 존경한다. 나 역시 '만리장성'을 뛰어넘고 싶다. 김연아, 박태환처럼 '탁구스타' 정영식이 되고 싶다."

만리장성 대표주자 마롱을 상대로 대접전을 펼친 그의 이름이 9일 오전 각 포털 검색어 1위를 휩쓸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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