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펜싱, 십자인대, 올림픽… 건강한 청년 박상영의 금빛 스토리

기사입력 2016-08-10 15:50


박상영 선수가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헝가리 제자 임레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박상영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2016.8.9/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A

피스트에 오르는 순간 상대방을 없애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한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섬뜩하다.

죽기로 싸웠고, 그는 살았다. 금메달의 주인이 됐다. 미완의 대기, 낯선 이름, 어제까지의 이야기다. 한국 펜싱 역사에 남을 2016년 8월 10일은 박상영(21·한국체대)의 날이었다.

한국 펜싱 남자 에페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인 그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쾌활한, 그야말로 건강한 스물한살 청년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취재진 앞에선 그는 여전히 꿈 속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를 즐겁게 했다. 솔직, 담백, 순수했다.

고통 없이 올림픽 정상에 설 수는 없다. 이제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시상대에 오르기까지 그의 펜싱인생 역시 춘하추동의 연속이었다. '금빛 스토리'를 품은 박상영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남자펜싱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3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제자 임레(헝가리)를 상대로 승리한뒤 환호하고 있다.2016.8.9/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어중간한 소년, 펜싱을 만나다

박상영은 펜싱을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 "어중간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특출나지는 않았고, 공부도, 말하는 것도 그랬다. 칭찬을 많이 받지 못하던 소년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올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시작한 운동. 남들보다 서너배의 노력이 더 필요했다. 경남체고 시절 성인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013년 쟁쟁한 선배들을 따돌리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역대 최연소 펜싱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비로소 올림픽 꿈을 꾸기 시작했다. 현실이 된 꿈의 무대, 2016년 리우올림픽이었다.

십자인대 파열, 멈춰버린 시계


호사다마일까. 승승장구하던 박상영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해 3월 왼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탈이 났다. 전방십자인대의 경우 수술과 치료, 재활까지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 지루한 재활의 시간을 보낸 뒤 그는 12월에 돌아왔다.

하지만 부상 공백으로 인한 후유증을 피할 수 없었다. 부상 후 첫 출전한 국내대회 1회전에서 탈락했다. 스무 살의 어린나이음에도 주위의 입길에 올랐다. "박상영은 끝났다." 자괴감을 느꼈고, 펜싱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모든 신경이 왼무릎에 집중됐다. "며칠만 쉬어도 굳고 운동량을 조금만 늘려도 열이 나고 붓고 힘들었다."

방황의 시기였다. 힘겨웠던 그의 마음을 붙잡은 것은 올림픽이었다. 박상영은 "힘들 때 올림픽에서 뛰는 것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기 전마다 늘 상상한 것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꿈에서는 금메달을 3번이나 땄다. 3관왕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아편 같은 상상이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금메달을 목에 건 후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왼 무릎이었다. "잘 버텨줘 고맙다"는 말에서 그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박상영.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리우올림픽 그리고 금메달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박상영이 그랬다. 그는 "금메달은 생각도 못했다. 세계인의 축제인만큼 즐기자고 생각했다. 언제 이런 대회 또 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후회없이 하고 싶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박상영은 금메달 후보가 아니었다. 그 또한 "난 단지 단체전을 하러 왔다"며 싱겁게 웃었다. 그래서 긴장을 안했고, 즐겼다. 32강, 16강, 8강, 4강, 어느덧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에선 나도 사람인지라 욕심이 많이 났다. 뭘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나니 잘 안되더라." 초심으로 돌아왔다. 10-14 상황이었다. 가슴에 단 태극마크가 생각났다. 이를 악 물었고 5점 연속 득점이란 기적적인 역전 드라마로 한국 선수단에 첫 펜싱 금메달을 선물했다. 상기된 표정의 그는 "아직까지 실감이 안난다. 내일이 돼 봐야 알 것 같다"며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는 싸워서 '냉전중'"이라고도 했다. "단체전이 끝난 후에나 연락이 되지 않을까"라며 수줍게 웃었다. 마음과 달리 쑥스러워 입 안에서만 맴돌았던 "부모님 사랑해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 선수단의 부진을 얘기해자 "런던 대회 때도 4일차부터 메달이 쏟아졌다. 오늘이 4일차다. 내일부터는 대한민국 선수단이 승승장구 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에페 단체전도 남았다. 14일 밤 시작된다. '무서운 막내' 박상영이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목표는 2관왕이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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