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아이콘' 박승희가 외치는 자기 주문

기사입력 2016-11-01 22:43


사진=스포츠조선DB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제51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열린 지난달 28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대회를 마친 박승희(24·스포츠토토)가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운동을 많이 하거나 피곤하면 근육과 인대가 붓는다"며 "사실은 좀 둔한 편이라서 잘 못 느낀다. 그런데 첫날 500m 경기 후 걷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1500m를 기권할까 생각하다가 '100% 컨디션은 아니더라도 타 보자'는 마음으로 했다"고 말했다.

박승희는 이번 대회에서 주종목인 1000m를 비롯해 500m와 1500m에도 나섰다. 500m에서 40초04를 기록하며 3위에 랭크,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린 박승희는 1000m에서도 1분20초31의 성적을 내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일찌감치 목표를 이룬 박승희는 1500m에서도 출전,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했다.

기록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2분8초27을 기록하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는 "주종목은 1000m다. 그러나 1500m를 타면 1000m에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사실 박승희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승희는 자타공인 '도전의 아이콘'이다.

2014년이었다. 박승희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출전,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목에 걸며 정상에 우뚝 섰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을 마친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물론 스케이트를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다. 내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박수를 받으며 쇼트트랙 정상에서 내려온 박승희는 '도전자' 자격으로 스피드스케이팅에 발을 내디뎠다.

출발은 좋았다. 박승희는 전향 첫 해 발군의 성장을 거뒀다. 본인 스스로 "재미있게 탔다. 성적도 쑥쑥 늘었다"고 말할 정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은 흐릿해졌다. 재미와 도전보다는 성적과 기록에 집착하게 됐다.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은 기록경기다. 점점 욕심이 생겼다"며 "2018년 평창 대회는 점점 다가오는데 마음처럼 빨리 늘지 않아서 힘들었다. 기록의 벽이 느껴졌다. 조급한 마음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일종의 슬럼프. 박승희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는 "비시즌 동안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생각을 많이 했다. 불안한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갖기로 했다"며 "쇼트트랙에서 정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순간이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려고 한다. 후회 없는 도전을 위해 즐기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박승희는 인터뷰 내내 평창 대회에서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를 위해 박승희는 끊임없이 '즐기겠다'며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천재도 노력파도 즐기는 자를 당할 수는 없다. 빙판을 즐겁게 지치는 스케이터 박승희, 그의 힘찬 도전은 계속된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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