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밀라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 동메달 수상하는 김길리. 밀라노(이탈리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2.16/
[스포츠조선 이현석 기자]어린 시절 상장을 들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던 소녀는 이제 올림픽 무대 시상대에 올랐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믿고 볼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다.
주니어 대회를 휩쓸며 한국 쇼트트랙의 스타 등장을 예고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주최한 주니어 대회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잘 어울리는 꼬마 스케이터였다. 성장세를 거듭한 소녀는 태극마크에 어울리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고교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폭발적인 속도와 강철 체력으로 국제 무대를 수놓았다.
별명도 슈퍼카의 이름을 딴 '람보르길리'다.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도 대단했다. 2023~202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종합 랭킹 1위를 차지해 '크리스털 글로브'를 차지했다. 최정상의 자리를 상징하는 '1번 헬멧'을 쓰고 2024~2025시즌 세계를 누볐다.
16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밀라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 동메달 획득 후 눈물 흘리는 김길리. 밀라노(이탈리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2.16/
16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밀라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 김길리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눈물 터진 김길리 위로하는 최민정, 임종언. 밀라노(이탈리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2.16/
하지만 국제 무대는 언제나 승리와 기쁨만이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시련도 있었다. 지난해 2월 하얼빈아시안게임에서 시니어 무대 데뷔 후 가장 큰 아쉬움을 삼켰다. 당시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 출전한 김길리는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1위로 달려 결승선을 앞둔 순간 궁리(중국)와 충돌했다. 충돌로 인해 대표팀은 4위로 추락했고, 김길리는 경기 후 아쉬움의 눈물을 쏟아냈다.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음에도 쉽게 웃지 못했다.
올림픽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첫 경기였던 혼성계주, 불의의 충돌이 김길리를 괴롭혔다. 12번째 바퀴에서 선두를 달리던 미국은 코린 스토다드가 갑작스럽게 휘청이며 넘어졌다. 스토다드로서는 몸의 균형을 잃고 선택지 없이 쓰러진 상황 뒤따라오던 코트니 사로는 스토다드를 피했으나, 달려나오던 김길리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다가오며 펜스쪽에서 결국 충돌하고 말았다. 한국은 어드밴스를 받지 못하며 탈락했다.
김길리는 혼성계주 탈락 이후 라커룸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부상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이었다. 동료들이 김길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왔다. 김길리는 "내 탓이 아니니까 다음 경기 잘 준비하자고 해줬다"고 했다.
16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밀라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 동메달 차지한 김길리. 밀라노(이탈리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6.02.16/
다만 김길리를 향한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이번 여자 1000m 준결선 경기에서는 2번째로 달리던 4번째 바퀴에서 뜻밖의 공격을 당했다. 뒤에서 타던 데스메어가 김길리를 대놓고 손으로 밀치며 김길리가 펜스로 쓰러지고 말았다. 김길리는 다시 몸을 일으켜 경기를 완주했다. 다행히 어드밴스를 받아 결선에 진출했다.
부상 걱정까지 커지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김길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000m 질주를 보여줬고 1위까지 올라서는 저력을 선보이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침내 걸어본 올림픽 메달, "생각보다 무겁다"는 말과 함께 김길리는 메달을 손에 꼭 쥐고 웃어보였다. "더 높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마음까지 부풀었다. 올림픽 메달에 어울리는 선수로 성장했다.
김길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부진 목표를 밝혔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믿고 볼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시련 끝에 김길리는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며, 누구나 믿음을 갖고 기대하며 지켜보는 선수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도전과 성장을 통해 선수 생활을 단단하게 만드는 한 해가 되고 싶다던 각오는 밀라노에서 굳게 지켜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