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티나(이탈리아)=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불굴의 스노보더' 이제혁(29·CJ대한통운)이 두 번째 패럴림픽에서 스노보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후 눈물을 쏟았다.
이제혁은 8일(한국시각) 이탈리아 코르티나 파라 스노보드 파크에서 열린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하지 장애(SB-LL2) 결선에서 에마누엘레 페라토네르(이탈리아), 벤 투드호프(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3위를 확정지은 순간 두 팔을 번쩍 들어 뜨겁게 환호한 이제혁은 슬로프에서 빠져나와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들과 현장을 지키던 취재진을 보자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한 듯, 이제혁은 한참 소리 내어 운 뒤에야 어렵게 입을 뗐다. "그저 너무 좋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현실감이 전혀 없어서 나중에는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기억이 안 날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제혁의 메달은 관계자들도 예상치 못했던 깜짝 메달이었다.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2022년 베이징 대회, 준준결선에서 조기 탈락했다. 이후 주요 국제대회에서도 눈에 띄는 입상 소식은 없었다. 현장 직관 응원에 나선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제혁이의 몸이 너무 가볍다. 계속 올라갈 것같았다"고 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이제혁은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예선을 6위로 마치면서 '잘하면 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면서 "하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거나 아쉬워하지 말고 '8등 안에만 들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임했다"고 털어놨다.
파이널리스트 4명이 겨루는 결선 무대, 코스 안쪽을 파고들던 이제혁은 3위 알렉스 매시(캐나다)와 충돌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중심을 잃지 않았다. 매시가 넘어졌고, 이제혁이 3위에 올랐다. 이제혁은 당시 상황에 대해 "오늘 몸 상태가 괜찮았기에 4위더라도 뒤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무조건 들었다.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레이스를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이후 비장애인 스노보드 선수로 활약했던 이제혁은 15세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 발목을 다쳤고, 부상을 치료하다 2차 감염으로 인대와 근육이 손상되며 장애를 지니게 됐다. 스노보드의 길을 포기했던 소년은 2018년 평창패럴림픽을 보고 다시 보드를 꺼내들었다. "평창패럴림픽을 보면서 '내가 있어야 할곳은 저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제혁은 스노보드를 '내 인생의 지지대'라고 했다. 그는 "야구를 그만두고 방황했을 때 스노보드를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다치고 나서 다시 무너질 뻔했을 때도 스노보드를 타며 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4년 전 첫 패럴림픽은 아쉬움의 눈물이었다. 조기 탈락 직후 "아무도 스노보드에서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 안하시겠지만 저는 잘하면 딸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아쉽다"며 눈물을 흘렸었다. 두 번째 패럴림픽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무도 메달을 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스노보드 종목에서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제혁이 사상 첫 메달의 기적을 썼다. 베이징에서 포디움의 꿈을 놓친 후 "오늘 보여드리지 못한 세리머니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대회에서 보여드리겠다"고 공언했었다. 4년 전 그날의 약속이 지켜진 후 당시 생각했던 세리머니를 묻자 "죄송해요, 저 지금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요" 하더니 시상대에 오르는 순간, 특유의 재기발랄한 몸놀림을 선보였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놓아버렸다면 결코 찾아올 수 없었던 순간,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대한민국 파라 스노보드의 새 역사가 씌어졌다. 코르티나(이탈리아)=공동취재단,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