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데뷔' 허수봉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예요"

기사입력 2016-11-14 18:00


허수봉. 사진제공=현대캐피탈

"아버지도 정말 좋아하셨을 거에요."

가는 한숨과 함께 허수봉(18·현대캐피탈)의 눈길은 하늘을 향했다.

울산 언양초등학교 4학년이던 그는 코치의 권유로 배구를 처음 시작했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과 놀고 싶은 열한살 꼬마였다. 팔도 아프고 힘들었다. 급기야 배구를 그만 두려고 했다. 그 운명의 갈림길에서 칭얼대던 그의 마음을 다잡은 이는 아버지였다. "아빠는 우리 수봉이가 끈기있게 배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단다."

그로부터 2년 후, 허수봉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사대부중에 진학했다. 경북사대부중은 전통의 배구 명문학교다. 허수봉이 본격적으로 엘리트 궤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뼈 아픈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중학교 입학 직후 날아온 청천벽력같은 소식. 아버지가 하늘로 떠났다. 뇌종양이었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끄집어낼 한조각 추억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운동만 하다가 아버지와 쌓은 추억이 없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어요."

기억 속을 헤매도 떠오르지 않는 아버지와의 시간. 허수봉은 차라리 '성공'이란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 이를 악물었다. 뛰고 또 뛰었다. 노력의 대가가 있었다. 경북사대부고로 진학하면서 고교 무대 대어로 성장했다.

졸업을 앞둔 허수봉은 대학 진학을 고려하지 않았다. 곧바로 프로 무대를 꿈꿨다. 도전이었다. 프로무대는 차원이 다르다. 대학에서 날고 기어도 꺾이는 곳이 프로다. 한데 아직 성장판도 닫히지 않은 유망주가 프로 출사표라니…. 이유는 하나, 돈이 필요했다. 허수봉은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스물두살 형은 대학 입학 후 군대를 갔다. 제대 한 뒤엔 학교에 안 가고 공장에 나가 돈을 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밝혔다.

허수봉은 2016~2017시즌 V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1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됐다. 고졸 루키 최초 1라운드 지명이었다. 허수봉은 "나보다 가족들이 더 기뻐했다. 어머니께선 계속 '우리 아들 정말 축하하고 기특하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분명 아버지도 정말 좋아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지난달 29일 현대캐피탈 진성태와 1대1 트레이드됐다. 입단과 동시에 팀이 바뀐 허수봉. 그는 "트레이드 전날 저녁 먹고 박기원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알았다. 당황하긴 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어느 팀에 있든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토록 고대했던 프로 무대 데뷔전은 11일 대한항공전이었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보냈던 팀이다. 223개월 4일만에 프로에 데뷔하며 정지석(대한항공·223개월 23일)의 최연소 데뷔 기록을 경신했다. 허수봉은 "너무 긴장해서 다리가 떨렸다. 서브 미스도 하고 리시브, 수비에서도 잘 못했다"며 "50점 짜리 플레이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주눅들진 않았다. 허수봉은 "감독님과 형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빨리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강점을 키워서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너무 일찍 헤어진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하여 V리그 최연소 선수로 프로 무대에 선 허수봉. 가장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기엔 아직 어린 나이지만 그의 의지만큼은 강철 처럼 단단하다. 그래서 더 기대를 품게 되는 선수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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