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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7392' 세대들의 화려했던 발자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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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 국내 프로야구 호타준족의 상징이었던 '리틀쿠바' 박재홍이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국내 야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세대라 할 수 있는 7392(1973년생, 1992학번)세대가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게 되었다. 이제 현역에 남게 된 '7392'세대 선수는 넥센 히어로즈의 송지만 단 한 명 뿐이다.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차명주, 설종진, 박재홍, 김종국, 염종석, 정민철, 홍원기, 송지만, 임수민, 안병원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게 만드는 대형스타들이 모여 있었던 7392 세대의 등장은 국내 야구의 수준은 한 단계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7392 세대가 국내야구 및 해외야구에 남긴 흔적들을 연대별로 되짚어 본다.

사진=롯데 염종석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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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롯데 자이언츠를 8년 만에 우승으로 이끈 '슈퍼 고졸루키' 염종석

1992년은 국내 프로야구에 센세이션이 불어닥친 해로 기억할만 하다. 당시만 해도 대졸신인과 고졸신인 간의 실력격차는 두드러진 편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고졸 신인투수가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것은 1991년 부산공고를 졸업하고 자이언츠에 입단한 좌완투수 김태형이 처음이었다. 문희수, 신동수, 박형렬 등 고교야구 무대를 평정했던 명 투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직행했지만 데뷔 첫 해 프로무대의 높은 벽을 절감해야만 했다.

그러나 1992시즌 당대 최고 투수였던 선동열의 슬라이더를 능가하는 더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들고 나온 신인 투수가 프로야구 무대를 평정하였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든 염종석이었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타자 앞에서 활처럼 휘는 슬라이더는 염종석 만의 전매특허였으며, 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한 그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 완봉승, 플레이오프 4차전 완봉승의 기염을 토하면서 팀 마운드를 이끌었고, 결국 1984년 이후 8년 만에 소속팀이 리그 패권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염종석은 1984년 최동원 이후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슈퍼 투수로 지금도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염종석 외에도 빙그레 이글스 정민철이 14승을 거두며서 일약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고, 태평양에 입단한 안병원도 10승을 기록하며, 염종석, 정민철과 함께 고졸 신인투수 돌풍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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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DB
1994년 -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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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우완 정통파 투수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대한민국 야구판은 들썩거렸다. 당시만 해도 박찬호와 동급생들 중에서는 임선동이나 조성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더 유력해 보이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은 예리했다. 박찬호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계약서를 내밀었고, 박찬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들이었던 최동원과 선동열도 입어보지 못했던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게 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위대한 출발은 1994년 4월 시작되었다.

스포츠조선DB
1996년 9월 - 프로야구 역사상 첫 30-30 (홈런-도루)클럽에 가입한 '괴물' 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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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시즌 프로에 데뷔한 박재홍은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한 신인타자였다. 데뷔하자마자 가공할 홈런 퍼레이드를 펼치던 박재홍은 너무 잘하다보니 상대팀 감독으로부터 부정 타격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기존 타자들을 무색하게 했던 박재홍의 가공할만한 기록 행진은 1996년 9월 3일 절정에 이르게 된다. 홈런을 뽑아내면서 그는 프로야구 역사상 첫 30-30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이후 박재홍은 1998시즌과 2000시즌에 추가로 30-30 클럽에 가입하면서 호타준족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사진=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1997년 5월 - 가장 완벽했던 '노히트 노런' 정민철

야구에서 투수가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나, 더군다나 단 한 명의 타자도 루상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투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화 이글스의 정민철은 1997년 5월 23일 홈구장인 대전에서 펼쳐진 OB 베어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날 경기에서 허용한 유일한 출루도 8회 1사후 베어스 심정수와의 대결에서 스트라이크 낫아웃이 되는 바람에 발생한 것이었다. 단 한 개의 볼넷도 허용하지 않고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정민철은 프로야구 통산 9번째의 노히트 노런이자 사상 첫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스포츠조선DB
1997년 8월 - 대한민국 메이저리거 사상 최초의 10승 박찬호

박찬호는 입단 4년차 되던 1997시즌 LA 다저스의 선발 로테이션을 꿰차면서 일약 에이스로 발돋움하게 된다. 박찬호는 1997년 8월 1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8이닝 동안 3안타 3사사구 1실점 7탈삼진의 눈부신 호투로 10승 고지에 올라서게 된다. 박찬호의 호투에 힘입어 당시 LA 다저스는 지구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공동선두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박찬호 외에 무수히 많은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라섰지만 아직까지 한국인 투수들 중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10승을 달성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이제 박찬호의 대를 이어 류현진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공략에 나서게 된다.

요미우리 조성민스포츠조선DB
1998년 5월 - 해외진출 선수들 중 사상 첫 완봉승을 달성한 조성민

1995년말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입단계약을 맺으면서 국내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진출하게 된 조성민은 1997시즌 임시 마무리로 기용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8시즌이 시작되면서 조성민은 선발 로테이션에 고정으로 합류하게 된다. 1998년 5월 2일 도쿄돔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홈 경기에서 조성민은 단 4개의 안타만 허용하고 무려 13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시즌 첫 완봉승을 거두게 된다. 당시 조성민의 완봉승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인 투수들 중 처음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현대 임선동스포츠조선DB
2000년 - 가장 화려했던 유니콘스 군단의 에이스 임선동

우여곡절 끝에 1997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임선동은 해외 진출 실패에 대한 상실감 탓이었는지 입단 첫 해를 제외하곤 좀처럼 아마시절의 명성에 걸맞는 투구를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1999시즌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임선동은 이듬해 2000년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당시 팀내 또 다른 에이스였던 정민태, 김수경과 더불어 유니콘스 마운드의 명실상부한 삼두마차(당시 임선동, 정민태, 김수경은 나란히 18승을 거두면서 공동 다승왕에 올랐으며,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는 시즌 최다인 91승을 올렸는데, 지금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로 활약한 임선동은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무리 투수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 마지막 순간 마운드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된다. 그 해 임선동은 18승 4패 탈삼진 174, 평균자책점 3.36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면서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의 영광까지 안게 된다.

스포츠조선DB
2006년 3월 - 도쿄돔을 숙연하게 만든 박찬호의 통쾌한 세이브

2006년 3월 5일, 일본 도쿄돔에서는 WBC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은 김선우를 선발로 일본은 잠수함 투수 와타나베를 선발로 내세웠다. 경기 초반은 일본의 압도적인 우세로 진행되었다. 4회 이진영의 그림같은 다이빙 호수비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경기 초반에 대량실점으로 무너졌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진영의 호수비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안정을 되찾았고, 이후 구원등판한 구대성의 호투 속에 2-1로 박빙의 상황이 진행된다. 운명의 8회초 공격에서 대한민국은 큰 경기만 되면 어김없이 해결사 본능을 발휘하는 이승엽이 일본의 이시이로부터 도쿄돔 우측 광고판을 맞히는 통렬한 역전 투런홈런을 터뜨리면서 도쿄돔을 가득 메운 4만여 관중들을 침묵의 도가니에 빠뜨린다. 김인식 감독은 9회말 일본의 마지막 공격에 마무리 투수로 박찬호를 내세운다. 박찬호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위력적인 직구를 앞세워 일본 타자들을 요리하였고, 투 아웃을 잡은 상황에서 대회 직전 한국을 상대로 30년 동안 이길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망언을 내뱉은 스즈키 이치로가 타석에 등장하였다. 이치로는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고, 박찬호는 세 타자를 모두 범퇴로 처리하면서 통쾌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자존심을 확실하게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스포츠조선DB
2010년 10월 - 시련을 딛고 일구어낸 박찬호의 아시아 선수 메이저리그 최다승 (124승)

2010년 10월 2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는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구원등판, 3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틀어막으면서 마침내 통산 124승을 달성한다. 노모 히데오가 세웠던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기록을 경신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의 나이는 38세로서 이미 선수로서 전성기가 훨씬 지났지만, 박찬호는 불굴의 의지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빅리그에서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2001년까지 거칠 것 없는 상승세를 구가하던 박찬호는 FA로 텍사스 레인져스와 5년 6,500만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을 맺으면서 선수생활의 절정에 다다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텍사스 입단 이후 박찬호는 끝도 없는 추락을 거듭했고, 그에게는 늘 거액의 먹튀 선수라는 불명예가 뒤따랐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이에 따른 체력감소를 감안하여 그는 선발에서 계투요원으로 전환에 성공했고,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 유니폼을 입은 당시에는 생애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마운드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입고 싶어하는 뉴욕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기도 하였다. 거듭된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을 달성한 박찬호는 진정한 최고투수란 무엇인지를 몸소 일깨워주었다.

이처럼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7392세대는 국내 프로야구 패러다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92년을 기점으로 고졸 신인 선수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고졸 신인 선수들의 몸값이 급등하게 된다. 또한 국내 최초의 메이저리거와 최초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로 이름을 남긴 선수들도 모두 7392세대인 박찬호와 조성민이다. 박재홍은 입단 첫 해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면서 진정한 호타준족이란 무엇인지를 몸소 입증하였다. 모든 스포츠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기량을 지닌 신인 선수들의 등장은 활력을 불러 일으킨다. 2013시즌을 앞두고 7392세대는 저물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세대들이 프로야구 판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양형진 객원기자, 나루세의 不老句(http://blog.naver.com/yhjmania)>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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