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왕조(DYNASTY)'라는 말이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양키스 왕조, 한국프로야구에는 해태 왕조, 미국프로농구에는 불스 왕조가 있었다. 뉴욕양키스는 무려 2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고, 해태 타이거즈는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도 6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들이 수많은 경쟁자를 물러치고 정상을 유지한 것은 스타의 힘도 아니고, 돈의 힘도 아니다. 중요한 순간 반드시 승리를 챙길 수 있는 능력이다. 맨유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2~201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의 주인공이 결정됐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맨유다. 맨유는 23일(이하 한국시간)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2012~2013시즌 EPL 34라운드 애스턴빌라와의 홈경기에서 3대0으로 승리했다. 해결사 판 페르시가 전반에만 3골을 몰아쳤다. 승점 84점(27승3무4패)을 기록한 맨유는 남은 4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한 경기를 덜 치른 2위 맨시티(승점 68·20승8무5패)와의 승점 차가 16점으로 벌어졌다. 맨시티가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해도 맨유를 추월하지 못한다.
자존심을 찾았다. 지난 시즌 맨시티에 1위 자리를 내준 맨유는 한 시즌 만에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다. 통산 20번째 EPL 우승이다. 2년 전 정규리그 우승 19회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사상 최다 우승을 갈아치운 맨유는 대기록을 하나 더 늘렸다. 사실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맨유를 우승후보로 평가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지난 시즌 EPL 득점왕 로빈 판 페르시를 영입했지만, 이마저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웨인 루니, 대니 웰벡,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등 수준급의 포워드가 즐비한 맨유에 필요한 것은 중앙 미드필더였다. 닉 포웰과 가가와 신지를 추가로 영입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수준급의 중앙 미드필더 보강 없이 시즌을 맞이했다. 우려는 첫 경기에서 현실이 됐다. 에버턴과의 개막전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0대1로 패했다. 마루앙 펠라이니를 앞세운 에버턴과의 미드필드 싸움에서 완패했다.
이때부터 맨유의 저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력의 중심에는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과감히 전략을 바꿨다. 풍부한 공격진을 앞세운 '닥공(닥치고 공격)'을 전면에 내세웠다. 올시즌 기록은 34라운드 현재 78득점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3득점 이상 경기가 15번이나 된다. 4대3 경기는 4번, 3대2 경기는 5번이나 펼쳤다. 말그대로 '닥공'이었다. 한골 먹으면 두골 넣는게 맨유의 축구였다. 후반기 '에이스' 판 페르시의 득점력이 주춤하고 리오 퍼디낸드와 네마냐 비디치 등 주축 수비수들이 돌아오자 다시 밸런스를 중시한 안정된 축구로 팀의 중심을 잡았다. 퍼거슨 감독은 갖고 있는 자원으로 정확한 시점에, 정확히 승리할 수 있는 카드를 꺼냈다. 이것이 주효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했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의 존재로 몸속 깊숙히 '이기는 법'이 자리매김했다. 맨유는 20년 동안 절반 이상을 챔피언으로 살아왔다. 우승경험이 없는 젊은 선수들도 맨유 유니폼을 입는 순간 '승리의 DNA'를 새기게 된다. 맨유는 시즌 내내 압도적인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어쨌든 승점 3을 꼬박꼬박 챙겼다. 부상자가 많았을때도, 체력저하가 찾아왔을때도 맨유는 잡을 경기는 잡았다. 장기레이스에서 우승하려면 어떻게 승점 관리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경기 내용이 좋다고 승점을 더 챙겨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승리다. 좋은 전력이 항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승리에 대한 의지와 승리한 경험이 차이를 가르는 경우가 더 많다. 맨유에는 경험이 만들어낸 '승리의 DNA'가 있다. 맨시티와 첼시는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차이를 따라잡기 쉽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승리자' 퍼거슨 감독은 갖고있는 재료로 최상의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요리사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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