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 투수 한현희는 억울할 것 같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수비 동작으로 까다로운 타구를 잘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돌발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도 그런대로 훌륭했다. 그런데, 이 뛰어난 수비력의 결과가 '투수 실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야구 규정상으로는 한현희의 실책이 맞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글러브 실책'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듯 하다.
스포츠케이블 채널에 '야구 명장면' 코너의 단골 손님으로 나올 법한 이 장면은 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롯데전의 막판에 튀어나왔다. 0-2로 뒤지고 있던 롯데의 8회초 공격. 넥센 벤치는 7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한 브랜든 나이트를 내리고 필승조로 한현희를 투입했다.
2점차의 아슬아슬한 리드 상황의 등판. 그만큼 한현희에 대한 넥센 벤치의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한현희 역시 첫 상대로 롯데 1번타자 황재균을 맞아 배짱 좋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구위는 역시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한현희가 두 번째 공을 던졌을 때 희한한 장면이 나왔다. 황재균이 받아친 공은 크게 바운드가 되면서 한현희의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한현희의 순발력이 타구보다 더 빨랐다. 글러브를 쭉 뻗어 마치 두꺼비가 파리를 낚아채듯 타구를 잡아냈다. 이제 여유있게 공을 잡아 1루에 던지기만 하면 아웃카운트 1개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강한 타구가 글러브 가죽 사이에 박힌 것이다. 한현희가 아무리 잡아 빼려고 해도 글버브 가죽 사이에 단단히 박힌 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한현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잠시후 공을 뽑는 것을 포기한 한현희는 아예 글러브를 1루수 박병호에게 던졌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일련의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과는 황재균의 세이프. 아쉽게도 한현희가 던진 '공이 낀 글러브'는 박병호에게 정확히 날아가지 못한 채 1루 베이스 앞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황재균은 여유있게 1루 베이스를 지나쳤고, 공은 여전히 빠지지 않았다. 전광판에는 실책이 표시됐다.
이날 경기 기록을 맡은 김상영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위원은 "만약 1루수가 타자주자보다 먼저 글러브를 잡았다면 평범한 '투수 송구아웃'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한현희가 글러브를 정확하게 던지지 못해 주자가 세이프됐기 때문에 '송구 실책'으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현희로서는 글러브가 원망스러울 듯 하다.
목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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