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37)이 마치 죄인 처럼 고개를 숙였다.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과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고전했다. 4차전까지 1승3패로 끌려갔다. 삼성 타선이 무기력한 게 부진의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 이승엽도 별로 한 게 없다. 4경기에 6번 타자로 선발 출전, 15타수 2안타 3볼넷 4탈삼진을 기록했다. 이승엽에게 득점권 기회가 몇 번 돌아갔지만 범타로 물러났다. 믿었던 이승엽이 해결사 노릇을 못해줬다. 그만큼 실망감도 클 수 있다.
2013시즌은 이승엽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 맞은 두번째 시즌이다. 그는 허리 부상 때문에 고전했다. 정규시즌 타율 2할5푼3리, 13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막판까지 부상을 참고 뛰다가 지난달 18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한국시리즈를 대비해 일찌감치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감기 몸살에 걸렸다. 정규시즌의 부진을 한국시리즈에서 만회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했다.
이승엽은 자신의 몸상태가 한창 좋았을 때 같지 않다고 자주 말한다. 한 시즌 56개의 홈런을 쳤던 게 10년전인 2003년이었다. 그는 잘 맞은 타구가 대구구장 펜스 앞에서 뜬공으로 잡힐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옛날 같았으면 펜스를 넘어갔을 타구였는데~"라고 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가 타석에 들어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이승엽 홈런!"을 외친다. 이승엽의 물리적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리막을 타게 돼 있다. 지난해 21홈런에서 올해는 13홈런으로 줄었다.
그렇지만 팬들은 이승엽에게 홈런을 쳐주길 기대한다. 팬들은 또 극적인 홈런을 쳐줄 것만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짜릿한 홈런을 자주 쏘아올렸다. 그 짜릿함이 팬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승엽의 방망이 스피드는 자꾸 떨어진다. 상대 투수들은 이승엽의 약점인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몸쪽에다 집요하게 뿌려댄다.
특히 두산 투수들은 이승엽이 가장 싫어하는 포크볼로 중무장돼 있다. 그는 올해 정규시즌 두산전 상대 타율이 2할2푼2리로 좋지 않았다.
이승엽의 부진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승승장구했다면 도드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삼성 타선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이승엽의 무딘 방망이가 더 부각이 됐다.
이승엽은 선수 유니폼을 더 입고 싶어 한다. 그만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승엽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때가 됐다. 그의 나이와 몸상태를 고려한 경기력을 기대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했을 때 이승엽이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도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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