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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도 갑자기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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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치 "종우는 가난했지만 참 씩씩했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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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유가 여러번 발목을 잡았지만 박종우는 씩씩하게 이겨냈다. 포곡초 유니폼을 입은 박종우의 당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축구에 전념하니 기술이 금방 늘었다.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공격수였다. 문제는 운동이 끝난 후였다. 운동 후 집으로 가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박종우는 경제적 이유로 숙소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박종우는 울지 않았다. 전 코치는 "종우는 숙소에서 혼자 개인운동을 하며 지냈다. 배고프면 축구부를 후원해주시는 분 식당을 찾아갔다. '아저씨 밥 주세요'하고 밥을 얻어먹었다. 넉살이 참 좋았다"고 술회했다. 중학교 진학때도 "당시 용인축구센터가 생기면서 허정무 감독님이 종우를 스카우트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도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힘들었다. 원래 가려는 동북중에 가지 못하고 태성중으로 갔다. 그마저도 학교에 문제가 생겨서 광탄중으로 옮겼다. 그래도 종우는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항상 씩씩하고,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다.
박종우는 광탄중을 거쳐 장훈고로 진학했다. 백 코치와의 첫 만남이었다. 백 코치에게 박종우는 '지적하는 재미가 있던' 선수였다. 지적한 부분을 완벽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초,중학교에서 스트라이커였던 박종우는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낯선 포지션을 권유받았다. 백 코치는 "종우를 데려올때부터 미드필더를 시키려고 했다. 중학교까지는 기술로 버틸 수 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종우의 자질이나 스타일은 미드필더에 어울렸다"고 설명했다. 박종우는 백 코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워낙 성실해 금방 적응을 했다. 단점이 하나 있었다. 너무 안정적인 패스만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백 코치는 "당시 장훈고가 점유율 축구를 했다. 그러다보니 종우가 공격적인 패스보다는 안전한 패스를 많이 했다. 참 많이 혼냈다. 서서히 좋아지면서 나중에는 많이 과감해졌다"고 했다. 2학년부터 베스트 멤버가 된 박종우는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성장하며 2006년 대통령배와 고교선수권대회를 휩쓰는 등 장훈고 전성시대를 열었다. 청소년 대표에도 이름을 올렸다.
두 코치는 박종우가 런던올림픽 뒤 독도 문제로 힘들어할때도 옆에 지켜봤다. 전 코치는 "그 때 종우가 밖에 함부로 나가지도 못했다. 마음 편하게 기다리라고 했다. 나쁜 일 한 것 아니었으니까"라고 했다. 백 코치도 "주위에서 자꾸 관심을 받는 것을 힘들어했다. 종우 어머님께 농담으로 '국회의원 나가면 되겠네요' 그랬다. 공인이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는 정신적인 부분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두 코치가 브라질로 향하는 박종우에게 이구동성으로 한 얘기가 있다. "분명히 기회가 온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박종우는 확실한 주전은 아니다. 한국영(가시와 레이솔)의 백업이 주 임무다. 전 코치는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을 가기 전에 메시지가 왔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뛸 줄 알았는데 아쉬워하더라.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준비가 중요하다"고 했다. 백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백 코치는 "종우가 대표팀 휴식일에 부산에 왔다. 그때 그렇게 말해줬다. '1차 목표가 엔트리 포함이었다면 2차 목표는 경기에 나서는 것이다.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것은 감독의 결정이다. 나갈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두 스승의 말 속에서 박종우에 대한 신뢰가 느껴졌다. 단 한번도 실망을 시킨 적이 없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뛸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