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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와 윤 감독은 2003년 여름 수원 클럽하우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2000년 수원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윤 감독은 수원의 2군 코치를 맡고 있었다. 그 때 박주호가 수원 클럽하우스에 왔다. 당시 수원 사령탑이었던 김 호 감독은 수원의 재목으로 키울 어린 선수들을 물색했다. 박주호가 레이더에 걸렸다. 방학만 되면 수원 클럽하우스에서 숙식을 하며 훈련했다. 이 때 윤 감독과 박주호는 친해졌다. 윤 감독은 큰 형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고등학생 박주호를 챙겨주었다. 방학이 끝나고 수원 클럽하우스를 떠나는 날 박주호는 선언했다. "코치님. 저는 코치님 계시는 곳에서 계속 축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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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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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선택이었다. 윤 감독 아래에서 박주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박주호는 2007년 캐나다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에서 기성용 이청용 하태균 이상호 등과 함께 뛰었다. 2무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경기력만은 최고였다. 주장 박주호를 향한 관심은 대단했다. 탐내는 구단들이 줄을 섰다. 박주호로서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구단으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유명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메디컬 체크에서 허리 부상이 드러났다. 계약은 없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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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의 도전은 계속 됐다. 미토에서 한시즌을 뛴 뒤 2009년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했다. 2010년에는 주빌로 이와타로 옮겼다. 옮길 때마다 윤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2011년 여름 박주호는 다시 윤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스위스 명문 FC바젤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주빌로에서는 거액의 연봉으로 박주호를 붙잡으려 했다.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윤 감독의 대답은 간단했다. "니 자신에 대해서는 니가 제일 잘 알기라. 어디를 가든지간에 잘할테니까 걱정하지 마래이. 그냥 생각대로 길을 걷거래이." 박주호는 아무런 미련없이 바젤로 떠났다. 바젤에서 마인츠로 이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주호는 항상 윤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윤 감독에게 5월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는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당연히 월드컵에 갈 줄로만 알았던 박주호는 부상으로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윤 감독은 박주호에게 '부상이라서 어쩔 수 없다. 실망하지 말고 일단 재활 훈련에 매진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빠른 쾌유를 빌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박주호의 회복 속도가 빨랐다. 동시에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가 다쳤다. 홍명보 감독은 고심 끝에 다친 김진수 대신 박주호를 선발했다. 윤 감독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따로 연락 하지는 않았다. 윤 감독은 지면을 빌어 박주호에게 조언을 했다.
"주호야. 일본과 스위스, 독일에서 뛰면서 충분히 경험은 쌓았제. 니가 할거는 하나 밖에 없다 아이가.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해야 된데이. 내가 아는 주호는 잘 할거니까 더이상 잔소리는 안 할란다. 파이팅."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