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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 포항, 그리고 태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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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손준호는 주말마다 아버지 손을 잡고 강구에서 1시간 거리인 포항 스틸야드를 찾았다. 항상 '키다리 아저씨'가 손준호를 반갑게 맞았다. 대구공고에서 손씨와 호흡을 맞췄던 동기생이자 포항의 레전드인 박태하 전 A대표팀 코치였다. 아버지와 '태하 아저씨' 덕에 선수들을 만나고 라커룸 구경 등 남들은 못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손준호는 "'태하 아저씨'가 많은 관중 속에 그라운드를 뛰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그 때부터 '포항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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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도 손준호의 발목을 잡았다. 손준호는 제물포중을 나와 포철중으로 옮기기 전 발가락뼈를 다쳤다. 좀처럼 낫질 않았다. 이듬해 팀 최고참인 3학년이 됐지만, 벤치신세였다. 당시 포철중 사령탑이었던 최문식 감독(현 아시안게임대표팀 코치)은 손준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손준호는 "최고참인 3학년인데 벤치에 앉아있기가 솔직히 창피했다. 그때는 '반드시 뛰겠다'는 오기로 운동을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완벽한 몸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컨디션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최 감독은 손준호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후 탄탄대로였다. 손준호는 추계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추계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중학선발팀에 뽑혀 국제대회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이 대회 활약으로 2008년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축구인의 날' 행사에서 최우수 중학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포철공고 진학 뒤에도 백록기에 나서 6골을 쓸어담는 등 적수가 없었다. 포철공고 졸업 뒤엔 영남대에 진학해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시절 이명주-고무열-김승대-손준호로 이어지는 포항의 황금세대가 완성됐다.
포항 관계자들은 "손준호를 보면 이명주의 데뷔 시절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럴 만하다. 짧게 자른 각진 머리와 검게 그을린 무표정 얼굴은 잘 아는 이가 아니라면 '이명주'라고 불러도 속을 만큼 닮았다. 데뷔 첫해 주전 도약 뿐만 아니라 폭넓은 활동량, 패스까지 판박이다. 황 감독은 "정말 좋은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 특히 축구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일품"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그러면서도 "이명주가 경기를 아우르는 힘이 있다면, 손준호는 아직 둔탁한 편이다. 좀 더 자신을 갈고 닦아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준호-이명주는 정말 친한 선후배다. 이명주가 알아인으로 이적한 뒤에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손준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명주는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 맞대결 하는 A대표팀에 합류하면서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다. 비록 팀은 다르지만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를 같이 누비게 됐다. 손준호는 "(이)명주형이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거론될 때 내심 함께 선발되길 바랐다"며 "혼자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되어 아쉬웠는데, 명주형이 A대표팀에 합류해서 기쁘다"고 웃었다. 하지만 '이명주바라기'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손준호는 "주변에서 명주형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감사할 따름"이라면서도 "명주형처럼 팀의 중심이 되고 싶다. '리틀 이명주'가 아닌 손준호로 기억될 것"이라는 각오를 드러냈다.
손준호의 꿈은 모든 포항 출신이 꿈꾸는 레전드가 되는 것이다. "스틸야드에서 팬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찌릿찌릿'하다. 나도 '태하 아저씨'나 황 감독님, 다른 선배들처럼 포항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