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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혁은 1998년 충남체고 2학년 시절 세계주니어양궁선수권에 나가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었다. 1999년 충남체고 3학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이른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됐다. 자만심에 빠졌다. 2000년부터 슬럼프를 겪었다.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해 열린 종별선수권에서는 꼴찌를 했다. 불러주는 실업팀도 없었다. 상무에 입대, 군복무를 마쳤다. 하지만 제대 후에도 오진혁의 방황은 계속 됐다.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대회를 TV로 지켜봤다. 활보다는 술과 친했다. 운동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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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세의 원동력은 담력이었다. 나락까지 떨어져본만큼 웬만한 것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스타일도 있다. 오진혁의 슈팅 자세는 한국 선수들과 다르다. 조금은 흐트러진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을 믿고 활을 쏜다. 이날 결승전 경기에서도 잘 드러났다. 오진혁은 큰 부담감 속에 경기에 나섰다. 구본찬(21·안동대) 이승윤(19·코오롱) 등 어린 선수들과 함께 단체전에 나섰지만 4강에서 탈락했다.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9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개인전에서는 홀로 나섰다. 결승까지 올랐다. 상대는 이승윤을 16강에서 완파한 용지웨이(중국)였다. 오진혁은 설욕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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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트가 분수령이었다. 오진혁과 용지웨이 모두 첫 2발은 9점을 맞추었다. 마지막 발을 앞두었다. 오진혁은 망설임없이 10점을 쏘았다. 용지웨이는 9점에 머물렀다. 승기를 잡은 오진혁은 5세트도 27-26으로 마무리했다. 자신의 아시안게임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따내던 순간이었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