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상식, 참 부럽다."
24일 제20회 코카콜라체육대상 시상식을 앞두고 한 타사 선배가 건넨 덕담입니다. 겸양의 미덕 대신 "네, 정말 자랑스러워요"라고 긍정하고 말았습니다.
1995년에 제정된 코카콜라체육대상이 올해로 20회를 맞았습니다. 코카콜라체육대상 앞에는 늘 '대한민국 최고, 최대의 아마추어 시상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대한민국에 많고많은 스포츠 시상식이 있지만,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이, 프로 스포츠가 아닌 아마추어 스포츠 시상식을 20년 넘게 한결되게 후원한 예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태릉선수촌에서 청춘을 다 바쳐 올림픽의 꿈에 도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무대는 많지 않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도 그때뿐, '반짝' 관심이 대부분입니다. 사회는 스포츠 영웅을 만들고, 지키는 일에 여전히 인색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20년 한길을 말없이 뚜벅뚜벅 함께 걸어온 일은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스무살의 성년식,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역대 MVP들을 어렵사리 한자리에 불러모았습니다. 제1회 수상자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부터 올해, 제20회 수상자인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까지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의 스포츠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황 감독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던 해, 1994년생 손연재는 세상에 없었다는 코멘트엔 웃음이 터졌습니다. '마라톤 영웅' 황영조와 이봉주, '체조영웅' 이주형, '펜싱영웅' 김영호, '복싱영웅' 이옥성, '탁구영웅' 유승민, '역도 여제' 장미란, '도마의 신' 양학선… 지난 20년간 세계를 호령했던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들이 한무대에 선 풍경은 뿌듯하고도, 가슴 짠했습니다. '막내' 손연재는 위대한 선배들 앞에서 역사의 책무감을 이야기하더군요. "막내이자 후배로 선배들과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 꿈만 같고 행복해요. 선배들과 한자리에 서게 되니 이 상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남은 기간 리우올림픽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코카콜라체육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랜 전통은 수상자 '개인기' 세리머니입니다. 손사래 치는 스포츠 스타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지만, 끼 넘치는 에이스들은 사실 못하는 게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통은 꿋꿋히 이어졌습니다. '피겨여제'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 레퍼토리인 '007 엔딩' 포즈를 재연했고, 스스로 '몸치'라던 박태환은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후 '보핍보핍' 댄스를 췄었죠. 양학선은 런던올림픽 금메달 후 MVP를 수상한 후 현란한 셔플댄스 스텝을 밟았고요. 올해 '요정' 손연재 역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갈라쇼 레퍼토리였던 걸그룹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댄스를 깜찍하게 선보였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역대 MVP들의 입담과 개인기 역시 역대급이었습니다. 코카콜라에서 특별제작한 20주년 황금트로피를 들고, 최고의 포즈를 취한 '레전드'에게 현장 사진기자들이 뽑은 포토제닉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코카콜라 100박스가 경품으로 걸렸습니다. 종목의 자존심을 건 세리머니 경연이 시작됐습니다. 손연재의 '여신 포즈', '펜싱 영웅' 김영호 감독님의 '찌르기' 포즈, '꽃미남 복서' 이옥성 코치님의 '원투펀치' 포즈, '평행봉의 신' 이주형 교수님의 '착지' 포즈, '탁구영웅' 유승민 코치님의 날쌘 스매싱 포즈 등 각 종목의 특성을 살린 포토제닉 경연은 유쾌했습니다. 코카콜라 100박스의 주인은 '도마의 신' 양학선이었습니다. 키스 세리머니 대신 금빛 코카콜라병을 입에 대고 벌컥 마시는 기발한 포즈를 취했습니다. 후원사 코카콜라가 가장 좋아할 법한 '정답' 포즈였습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레전드들의 '품격'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런던올림픽 은퇴무대에서 기품 있는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였던 '역도 여제' 장미란은 센스 넘치는 언변으로 좌중을 사로잡았습니다. 20주년 레전드 황금트로피 시상식에서 후배 손연재와 나란히 섰습니다. "오늘 오면서 손연재 선수 옆에만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는데,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손연재 못잖게 아름답다"는 사회자의 말에 "네, 저도 떳떳합니다"라고 답해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했죠. 시상식의 긴장된 분위기를 한순간에 누그러뜨리는, 배려와 여유가 넘치는 유머화법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왜 '레전드'인지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시상식 직후 장미란은 후배들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직접 신인상 트로피를 건넸던 1997년생 '사격 신동' 김청용을 찾아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응원했습니다. 스포츠 꿈나무는 지지하고 후원하는 장미란재단 이사장님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무대를 준비하는 것은 주최사의 몫이지만, 채우는 것은 선수들의 몫입니다. 선후배가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진심'이 있어 더욱 빛났던 20회 시상식이었습니다.
'셀프 자랑' 팔불출을 무릅쓰고, 코카콜라체육대상은 자꾸자꾸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10년 후 '30회' 이후 40회, 50회… 이 아름다운 무대가 대한민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길이 되고, 역사가 되고, 스포츠 스타의 적통을 잇는 성지가 되길, 무엇보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가장 행복한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선수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