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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줌마, 광해, 그리고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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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어촌편' 제작발표회. 멋있는 슈트와 보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차승원이 껄껄 웃으며 양손에 빨간색 고무장갑을 꼈다. 고무장갑의 감촉이 별로 낯설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손놀림을 보이는 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만재도 파란지붕집의 셰프 '차줌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시장이나 마트는커녕 그나마 하나 있는 동네 슈퍼도 걸핏하면 문닫기 일쑤인 만재도에서 차승원은 유해진이 통발로 잡아온 물고기와 텃밭 채소들로 삼시세끼를 차려냈다. 차승원의 요리 실력에 당황한 제작진이 작정하고 주문한 어묵과 회전초밥도 뚝딱 만들었고, 마당 아궁이를 이용해 빵과 피자까지 구웠다. 만재도에서 탄생한 요리는 무려 83가지. 차승원은 이제 식당에 가면 '직접 요리해서 먹지 뭐하러 왔냐'는 얘기까지 듣는다.

7일 MBC 새 월화극 '화정' 제작발표회. 차승원은 블랙 슈트에 매력적인 콧수염과 헤어스타일까지, '삼시세끼'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차줌마'의 무기인 빨간 고무장갑이 곁에 없기 때문일까. 요리 하는 남자 차승원, 유쾌한 예능인 차승원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화정'의 광해가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블랙 슈트가 예고편 영상에서 보았던 검은색 곤룡포처럼 보였다.

'화정'은 광해에서 인조에 이르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정치판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선조의 적통공주 정명의 삶을 그린 드라마다. 차승원은 광해를 연기한다. 진정한 왕의 길을 고민한 개혁군주와 비운의 폭군으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광해는 그동안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차례 다뤄졌다. 제아무리 차승원이라 해도 비교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차승원도 그런 시선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열심히 찍고 있다"고 했다. 그는 "조선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불운한 왕이 광해였다"고 소개하며 "최근 들어 광해가 재조명되고 있는데 내가 연기하는 광해가 여느 광해와는 다른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렇다고 기존의 광해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새롭게 재창조하는 건 아니다. 역사적 평가를 존중하되 광해의 변모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다. 그는 "사실 현장에서 연기를 할 땐 어떤 인물로 다가가야 하는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걱정은 걱정일 뿐인 거고, 최선을 다해 작가가 써준 대로, 그 인물에 근접하게, 내 상상력을 더해 연기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차승원은 예능 이미지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최대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내가 뭘 특별히 해야 한다거나 이미지 변신을 신경쓰지 않고 현장에서 배우들과 화합해서 연기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차승원은 광해 시대를 그리는 '화정'의 1막을 책임진다. 광해를 폐위시키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인조반정 이후 극에서 자연스럽게 하차한다. 중반부 이후엔 인조 역을 맡은 김재원이 2막을 연다. 차승원은 "사극 촬영의 가장 큰 적이 더위인데 나는 여름이 시작될 즈음 퇴장한다"며 껄껄 웃었다. 20~30대 젊은 배우들이 활약하는 안방극장에서 40대 후반 나이에도 주연배우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 나이에 게임 광고도 찍었다"며 "지금 그 게임이 핸드폰 게임 순위 1위라고 하더라"고 재치 있게 답해 좌중을 웃게 했다. 그 순간엔 잠시 '차줌마'가 돌아온 듯했다.

이제 차승원표 광해를 만날 시간이다. '화정'은 오는 13일 첫 방송된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