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유희관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당시 시즌 초반 필승계투조로 나섰던 유희관은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생기자, 긴급 투입됐다. 결국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해 10승7패, 3홀드 1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 자책점은 3.53이었다.
계속적인 갑론을박이 있었다. 당시 중론은 '분석이 되면 난타당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130㎞대 패스트볼과 완벽한 제구력으로 '느림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언젠가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게 냉정한 현실 같았다.
이듬해 이런 논쟁은 이어졌다. 12승9패, 평균 자책점 4.42를 기록한 유희관. 하지만 제구 자체가 불안했고, 난타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채웠지만, '느림의 미학'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사실 당시 전지훈련에서 유희관은 다소 페이스를 과도하게 조절하는 모습이 있었다. 결국 실전에서 공이 약간씩 높았고, 타자들에게 공략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한계를 의미하진 않았다.
유희관은 지난해 경험을 통해 많은 각성을 했다. 철저한 준비와 팀 동료들과의 호흡을 더욱 긴밀하게 유지했다. 그는 올 시즌 전 "지난해(2014년)에는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 편하다"고 무척 많이 강조했다.
결국 올해 거칠 것이 없다. 14승으로 다승 선두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기 내용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완벽한 변화를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그는 올 시즌 팔색조같은 변신이 있었다. 시즌 초반 정상적인 페이스를 유지했던 유희관은 중반부터 더욱 느리게 변화를 가져갔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32㎞ 안팎으로 유지하다가 128㎞ 정도로 떨어뜨렸다.
그의 너무 느린 패스트볼을 보고 팀 관계자들은 "상대를 혼란시키는 직체(직구+체인지업)"라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체'는 사실 패스트볼의 위력에 한계가 있는 베테랑 투수가 상대 타자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종종 구사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유희관은 모든 구종의 스피드를 떨어뜨렸다. 체력적 부담을 덜고, 더욱 제구력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7월29일 한화전에서 투구 폼을 송두리채 바꿨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던지는 세트 포지션에서 오른발을 뒤로 빼는 와인드 업 동작으로 투구폼에 변화를 줬다.
결국 공의 위력은 올라갔다. 추진력 측면에서 와인드 업 동작이 더욱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대팀의 분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타자간의 타이밍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결국 7⅔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다.
사실 중앙대 시절부터 유희관의 감각은 탁월했다. 당구, 농구 등 모든 종목을 섭렵했다. "SK 가드 김선형과의 슛 대결에서 항상 이겼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즉, 손가락의 감각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변화에 대한 무서운 적응력이다. 세트 포지션에서 와인드 업 동작으로 단숨에 바꿨다. 민감한 투수들의 경우 엄두도 내지 못하는 폼이다. 투구 밸런스가 급격히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희관은 올스타 전에서 와인드 업 동작으로 투구를 한 뒤 곧바로 변화를 이뤄냈다.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유희관은 타고난 감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유희관은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그는 "느린 공을 가진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4일 울산 롯데전에 선발로 출전, 8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내용을 보였다. 경기 도중 매우 강렬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1회와 5회 위기가 있었다. 5회 선두타자 강민호에게 좌중월 2루타를 얻어 맞았다. 그리고 7회 다시 만났다.
와인드 업 자세를 계속 유지하던 유희관. 1B 1S에서 갑자기 또 다른 변형 동작을 가져갔다. 그는 보통 와인드 업 동작에서도 타고난 유연함을 바탕으로 오른 다리를 그대로 가슴으로 끌어올린 뒤 추진력을 얻는다. 그런데 3구째 가슴으로 올라가려던 다리를 급격히 떨어뜨리면서 더욱 빠른 타이밍의 투구 동작을 가져갔다. 강민호는 헛스윙을 했다. 4구째는 정상적인 투구폼을 찾아갔는데, 강민호는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서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유희관은 "민호 형이 내 투구에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 같아서, 변형동작을 가져갔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배영수 선배님이 잘 쓰시는 방법이다. 한 번 응용해 봤는데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와인드 업 투구 동작으로 바꾼 지 두번째 경기였다. 여기에 또 다른 변형 동작을 가져갔다. 이쯤되면 유희관의 타이밍 싸움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느림의 미학'은 더 이상 한계가 없어 보인다. 울산=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