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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감독을 웃긴 이범호의 '특제 애교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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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감독님, 한 번만 봐주세요~"

'애교' 한 스푼에 '농담' 두 스푼. 그리고 은근슬쩍 비밀 레시피 '진심'을 듬뿍 담으면 완성. KIA 타이거즈 이범호가 특제 '꽃범호표 애교 로비'를 들고 옛 스승을 찾아갔다. 4년전 KIA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가을잔치까지 함께 나갔던 kt 위즈 조범현 감독에게 '특제 애교 로비'를 듬뿍 대접했다. 지금은 서로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두 사람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매단 채 덕담을 주고 받았다.

이범호의 애교 로비는 17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등장했다. 홈팀이 먼저 훈련을 마친 뒤 원정팀인 kt 선수들이 훈련을 진행하던 시간. 라커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범호가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1루쪽 원정 덕아웃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어딘가 비장한 표정. 취재진과 담소를 나누던 조 감독도 의미심장하게 이범호를 바라봤다.

조 감독 앞에 나타난 이범호는 금세 표정을 바꿨다.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매단 채 "감독님 오늘 살살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조 감독은 이 말에 싱긋 웃었다. 그런데 이건 이범호가 야심차게 준비한 메인 요리(애교)에 앞서 나온 애피타이저와 같은 것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트리는 동시에 앞으로 나올 메인 요리의 맛과 효과를 더욱 크게 만드는 역할.

이범호는 곧바로 애교와 애원을 농담으로 버무린 '로비'를 풀어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저희도 한 번 (가을잔치에)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독님, 한 번만 봐주세요"라며 진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간절함'이 언뜻 엿보인 순간. 효과는 엄청났다. 무뚝뚝한 조 감독이 시쳇말로 '빵 터졌다'. 조 감독은 소리내어 "껄껄껄" 웃었고, 이범호와 현장 취재진 모두 폭소를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조 감독은 역시 냉철한 승부사였다. 간신히 웃음을 멈춘 조 감독은 "범호야, 우리가 시작하자마자 8경기 그냥 줬지 않냐"라고 반격했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이범호다. 그는 지체없이 "그 다음 6경기는 저희가 다 드렸습니다"라며 조 감독의 말을 역으로 받아친 것. 정확히 따져보면 조 감독은 완전히 맞았고, 이범호는 반만 맞았다. kt가 시즌 개막 후 KIA에 8연패를 당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 하지만 이범호의 말처럼 이후 KIA가 kt에 6연패를 한 것은 아니다. 7월3일 수원 경기부터 8월6일 광주 경기까지 4연패를 당하다가 8월7일 광주 경기에서는 KIA가 6대5로 이겼다. 이후 8월27~28일 수원 2연전에서 kt가 모두 이기면서 결과적으로는 KIA에 6승을 따내긴 했다.

어쨌든 이범호는 정성껏 준비해 온 애교 로비를 모두 마친 뒤 돌아가며 후식같은 마지막 멘트까지 날렸다. 그는 "한화하고 롯데와 경기 남은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에이스 모두 넣어서 총력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해 다시 한번 조 감독의 배꼽을 쥐게 한 뒤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냉철한 조 감독이 이범호의 '특제 애교 로비'에 넘어갈 인물은 아니다. 그래도 조 감독은 웃음만큼은 멈추지 못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