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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냉정했던 염갈량을 조급하게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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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염갈량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을까.

넥센 히어로즈가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2경기를 먼저 내주며 큰 위기에 빠졌다. 시즌 마지막까지 두산과 정규시즌 3위 자리를 놓고 싸우다 한 끝차이로 밀렸고, SK 와이번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1경기로 잘 끝내며 두산과 맞붙게 됐지만, 정작 중요한 상황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염경엽 감독은 홈 목동에서 이어지는 3, 4차전 필승을 다짐하며 리버스 스윕을 외치고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염 감독은 국내 프로 감독 중 손꼽히는 지략가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흥분하지 않고,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꾀가 많은 승부사로 통한다. 하지만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는 그런 염 감독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선수 운용부터 인터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신경이 곤두서있고, 불안해 보인다.

먼저 선수 운용. 손승락과 한현희 등 좋은 불펜 자원들을 두고도 어린 조상우를 과사용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상우의 구위가 실제 제일 좋기는 하지만, 나름 포스트시즌도 장기적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조상우로 1경기 이기고 보자는 식의 투수 운용이 되고 있다. 염 감독도 답지 않은 선택.

신경이 곤두선 인터뷰도 그렇다. 염 감독은 2차전이 끝난 후 "깨끗한 야구를 하자"는 폭탄 발언을 했다. 양팀의 벤치클리어링이 있었고, 잠실구장 조명 사건도 있었지만 염 감독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상대에 신경전을 거는 모습은 처음이다. 물론, 승부의 세계에서 어느정도 신경전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주변에서는 "결국, 패배에 대한 불안감을 노출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분석하고 있다.

무엇이 염 감독을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먼저 억울함. 난생 처음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 후유증이 생각보다 컸다. 다행히 첫 경기에서 이겨 1경기 만으로 끝냈지만, 에이스 앤디 밴헤켄을 쓰고 넘어왔다는 것이 못내 불안했을 것이다. 1-2차전 선발 맞대결은 넥센 양훈-라이언 피어밴드, 두산 더스틴 니퍼트-장원준이었는데 무게감이 두산쪽으로 흘렀다. 5전3선승제 단기전에서 1, 2차전 경기 중요성은 설명이 필요없다. 이런 상황에서 1차전 승리를 다잡은 상황까지 갔다. 그런데 두산 김재호의 사구 논란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연장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염 감독이 2차전 경기를 앞두고 김재호의 사구에 대해 "선수는 잘한 플레이다. 하지만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해야한다. 선수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2차전 경기를 앞두고까지 1차전 경기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 장면이 억울했다는 얘기다. '다 이긴 경기를 놓쳤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심리 상태가 2차전에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2차전마저 8회 천금같은 동점, 역전 찬스를 날려 염 감독을 '멘붕'에 빠뜨렸다.

더 큰 원인은 팀의 미래 때문. 프로팀의 목표는 우승이다. 더군다나 넥센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무릎을 꿇었다. 올라갈 목표는 하나 뿐,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염 감독 입장에서는 올해가 승부의 해일 수밖에 없다. 올해는 강정호가 빠진 빈자리를 신인 김하성으로 그럭저럭 메웠다. 하지만 올시즌 후 4번타자 박병호의 미국 진출이 유력하다. 여기에 마무리 손승락, 토종 최다안타 타자 유한준, 캡틴 이택근 역시 FA다. 넥센이 FA 선수들을 다 잡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현재 흘러가는 상황을 볼 때 몸값이 많이 뛰어오를 이 선수들을 잡을 여력이 없다는게 야구계 평가다. 한마디로 내년에는 차-포-상-마 다 떼고 야구를 해야하는 입장이다. 결국, 시즌 후반 손승락을 대신해 조상우를 마무리로 기용한 것도 구위 측면을 떠나 내년 시즌을 대비하는 차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감독이 꼭 이기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힘이 선수들에게까지 전해진다. 물론 이는 '우리 감독님이 왜 저러시지'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게 하는, 건강한 승리에 대한 의욕이다. 감독이 변하면 선수들은 눈치를 보고 야구에 영향을 받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