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태형 감독은 4일 전부터 신호가 있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찌릿찌릿했다.
그는 "사흘 전 지인들과 축하겸 중국집에서 빼갈을 마셨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생애 가장 아픈 경험을 했다. 오른 다리가 퉁퉁 부었다"고 했다.
통풍(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침착되는 병. 관절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통증은 매우 극심하다)이 갑자기 왔다. 겨우 참고 오전 일찍 응급처치를 했다. 그리고 또 다시 각종 우승 축하 자리를 돌아다녔다.
김 감독은 10일 두산 사무실 대회의실에서 담당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몸은 아팠지만,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올 시즌 결산을 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숨막혔던 순간, 시즌의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놨다.
▶몸상태는 어떤지.
─통풍이 왔는데, 견딜만 하다. 시즌 전 몸무게가 82~85㎏을 왔다갔다 했었는데, 7㎏ 정도가 불었다. 포스트 시즌에 마음이 답답하니까 먹는 걸로 풀었다. 그 후유증인 것 같다. 양복을 다시 맞춰야 할 것 같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우승까지 왔다. 솔직히 포스트 시즌 전 어디까지 갈 거라고 예상했나.
─3위 팀이니까, 4위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는 이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NC는 막판 워낙 좋았다. 때문에 NC와의 플레이오프는 마음을 비웠었다.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하늘에 맡겼다.
▶언제 우승을 예감했나. 넥센과의 4차전에서 대역전승(2-9에서 11대9로 뒤집었다) 직후 그런 예감이 들었나.
─그때도 한국시리즈 우승은 예상치 못했다. 단지, 운이 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있었다. NC전에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본격적으로 우승을 직감한 것은 한국시리즈 3차전이 끝나고서다. 2승1패로 앞서고 난 뒤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차전을 잡은 뒤 확신이 있었다.
▶NC와의 5차전에서는 어땠나.
─4차전 끝나고 나서 NC 선발이 스튜어트였다. 우리는 장원준이니까 50대50으로 봤다. 하지만 낮 경기에 강하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있었다. 선수들의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오히려 벤치에서 선수들이 덤덤했다. 2점 주고 역전을 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했는데.
─뼈아프긴 했는데, 호텔에 들어왔을 때 막상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다. 2차전 니퍼트, 3차전 장원준이 잘 던져주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2차전을 잡은 뒤, 1차전 패배가 더욱 생각났다. '어후 열받네'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1차전이 끝난 뒤 오재일(결정적 실책을 했다)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농담조로) 보면 욕할 것 같아서. 하하.
▶1루수로 고영민을 많이 아꼈는데.
─로메로와 오재일이 한국시리즈 단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했다. 고영민은 히든 카드였다. 하지만 허리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신중하게 때를 기다렸다. 결국 고심 끝에 5차전 선발로 내세웠다. 4회에 2타점 적시타를 친 뒤 홈까지 훔쳤다. 그리고 못 뛰겠다는 X 표시를 하더라. 자기 할 거 다 하고 깔끔하게 빠졌다.
▶초보 사령탑 답지 않게 포스트 시즌 미디어 데이 때마다 날카로운 입담이 있었다.
─의도된 것은 없었다. 순간순간 나온 것이다. 염경엽 감독이 내 스타일을 잘 안다. 저쪽(넥센) 핵심은 조상우니까. '너무 많이 던지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했고, NC전 미디어데이에서도 이호준이 1루 연습을 한다고 들어서 그렇게 얘기했다.
▶선수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상대 사기를 떨어뜨리는 심리전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심리전은 아니다. 단지, 그런 부분을 생각하긴 했다. 전쟁터 나갔는데, 단지 '이기자'라고 말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 병사들에게 이기는 분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 초보 사령탑이지만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겉으로 볼 때는 매우 엄격하고 카리스마가 굉장한 사령탑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 벤치에서는 어떻게 했나.
─타이론 우즈 사건 때문에 '커튼 리더십(우즈가 팀 워크를 해치자 커튼을 치고 1대1로 담판을 지었다는 현역 시절 에피소드)'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그런 리더십을 생각한 것은 없다. 홍성흔이 어떻게 얘기했는지, 선수들이 알아서 긴장을 많이 했다. 어린 선수들이 많이 무서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농담도 많이 했다.
▶시즌 중 경기 도중 김재호를 불러놓고 뭐라고 하는 게 TV 중계화면에 잡혔다. 뭐라고 했나.
─주루 플레이를 느슨하게 했다. '너 기분 나쁜 거 있어'라고 하자, '아닙니다'라고 했다. '힘들어?'라고 묻자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가 봐'라고 얘기했다. 올 시즌 고참들에게는 대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캠프 때부터 훈련 스케줄 관리를 알아서 하라고 맡겼다. 근데 그라운드에서 힘들어하면 혼 나야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본인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홍성흔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 고참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시즌 중에 그런 사정을 전혀 봐 주지 않았다. 2군도 내려보냈는데, 여전히 파이팅이 넘쳤다.
▶한국시리즈 도중 예언 하나가 기가 막혔는데. (온라인 상에서 떠도는 예언이었다. 1차전 패한 뒤 5차전 5회 안에 두산 우승이 사실상 결정난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봤다. 홍성흔이 4차전에서 '저 때문에 경기를 이길 것 같습니다'라고 농담 하더라.(예언 중 하나가 4차전 연장전 끝에 싫어하는 선수때문에 이긴다는 내용) 그래서 '너 출전 안 시킬 건데. 어떡하지'라고 얘기해 줬다. 싫어하는 선수는 노경은이었다. 연장에 갔으면 홍성흔이 대타로 나가서 이겼을 것 같다. 하하.
▶스와잭은 플레이오프 끝난 뒤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어떤 속사정이 있었나.
─ 그 선수는 일단 한국 야구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야구에 집중할 수 없으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 팔 상태도 본인이 좋지 않았다고 하니까. 스스로 놓은 것 같다.(스와잭은 준플레이오프 때부터 팔 부상으로 던지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계속 했다.)
▶니퍼트는 정규시즌에는 부상으로 부진했는데, 포스트 시즌에서는 환상적인 투구를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던졌다. 본인의 베스트 공을 던졌다. 3달을 기다렸는데, 한 방에 날려줬다. 내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장원준 역시 3차전 공은 정말 기가 막혔다.
▶삼성은 핵심 투수 세 명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솔직히 그때 심정은 어땠나.
─솔직히 야수 쪽이 더 겁났다. 삼성의 막강 타선에 우리 젊은 투수들이 많이 약했다. 투수 빠진 것에 대해서는 물론 유리한 부분을 생각했다. 하지만 타순때문에 거기에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다. 야구는 어떻게 변할 지 모르고, 투수 세 명이 빠졌기 때문에 삼성 팀워크가 더욱 탄탄하게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투수 활용폭이 매우 좁았는데.
─우린 니퍼트 장원준 이현승, 딱 세 명의 핵심 선수를 가지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때문에 무조건 5차전 안에 끝내야 한다고 봤다. 7차전까지 가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 시즌에서 자신이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을 꼽는다면.
─내가 생각해도 잘 참았다. 스스로 불안했던 성격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욱하고 터져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올해 그런 부분이 없었다. 속에 없는 웃음도 보내고, 속에서는 욕도 나오지만 "괜찮아 임마"라고 말도 했다. 못한 부분은 준비다. 중요한 상황에서 작전을 냈을 때 선수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미리 준비를 시키고 대화를 원활하게 했어야 했는데, 감독 입장에서 확신없는 상황에서 작전을 내는 경우가 있었다. 이 부분은 올해 스프링캠프부터 고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구상은.
▶일단 용병만 잘 뽑자는 생각이다. 타자의 경우 일단 수비 포지션에 상관없이 타격이 되는 선수를 뽑고 싶다. 지난 시즌 3루수 외국인 선수를 원했는데, 김재호 최주환 허경민 등이 체력적으로 강하지 않은 선수들이다. 144경기를 치를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3루수 외국인 선수를 원했던 것이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