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이었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 현(20·삼성증권 후원)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29·세르비아)로 꼽았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와 함께 기대감을 전했다. "조코비치는 주니어대회 때 지나가다가 얼굴만 잠깐 스친 적이 있다. 투어 대회 때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천천히 생각해볼 것이다."
2014년 프로로 전향한 정 현이 조코비치와 대결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추첨을 통해 조코비치를 뽑거나 아니면 대회 결승에는 올라야 했다. 7개월 만에 꿈이 이뤄졌다. 운이 따랐다. 정 현은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각)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남자 단식 1라운드에서 조코비치와 충돌하게 됐다. 설렘이 먼저 였다. 정 현은 "한 번은 꼭 경기를 해보고 싶었던 선수였다"고 했다. 침착함을 유지했다. 다른 선수와의 대진처럼 특별한 준비없이 평소대로 훈련했다. 반면 조코비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정 현은 테니스계에서 떠오르는 스타 중 한 명이다. 솔직히 정 현의 경기를 많이 본적은 없다. 내가 알기로 정 현은 키가 큰 선수고 코트 뒤쪽에서 강점이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현은 키에 비해서 강력한 서브를 갖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력차는 분명했다. 세계랭킹 1위와 51위의 만남이었다. 정 현에게는 승리보다 배움의 자세가 옳았다. 그래도 '언더독'의 반란을 꿈꿨다.
18일 경기가 펼쳐진 호주 멜버른의 로드레이버 아레나에 조코비치보다 먼저 들어선 정 현은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대회 메인 코트에서 경기를 펼쳐야 하는 떨림도 극복해야 할 요소였다. 뚜껑이 열렸다. 정 현의 전략은 자신의 장기인 그라운드 스트로크 플레이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교함과 집중력이 아쉬웠다. 오랜 랠리 끝에 간발의 차로 아웃이 되는 스트로크 실수가 자주 연출됐다. 승부처에서 발목을 잡은 범실이 29개나 됐다. 특히 리시브 상황에서 득점율이 저조했다. 22%에 그쳤다. 리턴 포인트에 대한 득점도 15-41로 뒤졌다. 경험 부족은 네트 근처에서 발생했다. 조코비치는 풍부한 경험으로 네트 플레이를 자주 펼쳤다. 100% 성공률을 보였다. 15차례 네트 플레이를 모두 성공시켰다. 반면 정 현은 10차례 중 5차례밖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역시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하기 위해선 강서브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날 조코비치는 10개의 서브에이스를 기록했다. 정 현은 절반에 그쳤다.
하지만 정 현은 젊은 패기와 강한 집념을 보였다. 특히 매 세트 허를 찌를 플레이를 펼칠 때는 조코비치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포기는 없었다. 정 현은 세트스코어 0-2로 뒤진 3세트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던 상황에서도 자신의 서브 게임을 차근차근 따내며 4-5까지 끌고갔다. 이날 가장 많은 게임을 따낸 세트였다. 그러나 결과는 0대3(3-6, 2-6, 4-6) 완패였다.
정 현에게 경기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정 현은 기자회견에서 "어렸을 때 굉장한 경험이었고 좋은 걸 배웠다"고 밝혔다. 이어 "(조코비치는 )실책이 거의 없었다. 공이 무거웠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덧붙였다. 또 "행복하고 긴장하기도 했다. 메인 코트라 떨렸다"고 말했다.
조코비치는 정 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정 현은 처음 만나는 선수였다. 이제 겨우 19세다. 키도 크고 베이스 라인에서 견고한 플레이를 펼쳤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한 조코비치는 "정상급 선수가 될 만한 좋은 경기력을 가졌다"며 엄지를 세웠다.
2016년 1월 18일은 정 현의 테니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일 듯하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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