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품격은 위기에서 나온다.
절대절명의 순간, 아무리 슈퍼스타라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심장을 죄어오는 압박감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결국 경험이다. 숱한 위기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 그게 바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베테랑의 가치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우즈베키스탄전. 선수들의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전술도, 전략도 아니다. 분위기를 바꿔주는 말 한마디다.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거나,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로 선수들을 깨울 수 있다. 전력분석관으로 변신한 차두리(36), '맏형' 곽태휘(35·서울)가 그랬다.
차 분석관은 이번 우즈벡전의 '키맨'으로 꼽혔다. 유럽에서 지도자 연수 중이던 차두리는 이란전 패배 후 전격적으로 대표팀에 복귀했다. 라이센스가 없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침체된 대표팀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적임자로서 기대를 모았다. 슈틸리케 감독도 "자신과 선수단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차두리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차 분석관 합류 후 대표팀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해피 바이러스로 무장한 차 분석관은 대표팀에 웃음을 되찾아왔다. 이정협은 "두리 형이 와서 분위기가 좋아졌다. 형이 한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 주려고 하고, 그게 동기 부여가 된다. 우리도 밝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장 분위기는 또 다르다. 설상가상으로 0-1로 끌려다녔다. 차두리는 고비마다 벤치에서 나와 선수들을 독려했다. 교체투입되는 선수들의 마음을 풀어준 것도 차 분석관이었다. 이재성은 "아무래도 중요한 경기이다보니 심리적인 부담이 컸다. 두리 형이 어떻게 플레이를 할지 생각하고 준비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후반 40분 터진 구자철의 역전골로 이뤄낸 대역전승, 차두리는 가장 먼저 그라운드에 나서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다. 본인의 임무도 소홀하지 않았다. 차 분석관은 김기희(상하이 선화) 장현수(광저우 부리) 두 센터백을 잡고 부족했던 것을 설명해줬다. 선수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진정한 소통이었다.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들을 이끈 것은 차두리 뿐만이 아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곽태휘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해줬다. 곽태휘도 선수들을 독려해줬다"고 했다. 사실 곽태휘는 캐나다, 우즈벡과의 2연전에서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속상할 수도 있지만, 경기장 밖에서 해줄 수 있는 몫을 모두 소화했다. 곽태휘의 리더십은 정평이 나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2015년 호주아시안컵 모두 주장 완장은 다른 선수가 찼지만, 곽태휘는 묵묵히 후배들을 이끌었다. 우즈벡전도 마찬가지였다. 흔들리던 포백의 중심을 잡아줬고, 자신감을 더해줬다. '맏형'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렸다.
공교롭게도 경기 후 뜨겁게 포옹을 한 것은 차 분석관과 곽태휘였다. 경기에 뛰지 않았지만 서로가 무엇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테랑'만이 느낄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감격이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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