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기싸움은 없었다.
28일 부산 파크하얏트에서 열린 2017년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1차전(29일 오후 7시30분·구덕운동장) 미디어데이는 이전 미디어데이와 좀 달랐다.
이날 행사에는 김도훈 울산 감독과 이승엽 부산 감독대행, 임상협 이정협(이상 부산), 강민수 이종호(이상 울산)가 각팀을 대표해 참석했다.
팬들의 흥미를 위해 일부러라도 '폭풍전야'의 신경전이 깔리는 게 보통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가 더 넘쳤다.
부산이 이틀 전 클래식 승격에 실패한 데다, 고 조진호 감독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울산도 상대를 자극하는데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우승 열망 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이승엽 감독대행은 "클래식 승격이 무산됐지만 마지막 2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고 조진호 감독께 드려야 할 선물도 있다"고 다짐했다.
이정협도 같은 마음이다. "승격하지 못해 아쉽지만 선수들이 정신력으로 잘 이겨낼 것이다. 감독님(고 조진호)께 좋은 선물을 드리자는 동기부여가 돼 있다. 빡빡한 일정에 몸이 힘들다는 핑계는 하지 않겠다."
김도훈 감독은 "부산의 올시즌 과정을 보면서 매우 안정적인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클래식을 대표하는 팀으로서 승리하도록 하겠다. 2017년은 울산 현대의 감독-선수가 아닌 FA컵 우승팀의 구성원으로 남게 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주장 강민수는 "울산에 아직 FA컵 우승컵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승을 위해 준비 해왔다. 리그 최종전 강원과의 경기에서 좋은 흐름을 가져오는데 성공한 만큼 결승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팀 감독은 이날 이례적으로 결승 1차전에서 선발 투입할 스트라이커를 공개했다. 부산은 이정협이 아닌 최승인을 꼽았다. "이정협은 체력적으로 힘든 데다 미세한 타박상이 있다. 그동안 FA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최승인이 적합하다"는 게 이 대행의 설명이다.
김 감독은 옆에 앉아 있던 이종호를 가리키며 "이종호는 부주장으로서 활력소가 된다. 이런 경기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적인 부분, 팀이 하나되는 희생심이 좋아야 한다. 이종호는 이에 적합한 공격수다. 호랑이 세리머니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라앉은 듯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요주의 상대 선수를 지목해 달라는 질문에서 살짝 뜨거워졌다. 울산의 이종호와 강민수는 끝까지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다. 강민수는 "부산은 특정 선수가 위협적이라기보다 팀으로서 잘 갖춰졌다는 생각이다. 우리도 팀으로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피해갔고 이종호는 "부산은 클래식에 있던 팀이고, 선수들 개인적으로도 모두 능력이 있다"고 '립서비스'를 했다.
반면 도전자 입장인 부산은 "포지션에서 (김)창수형과 부딪힌다. 부산에 함께 뛴 적이 있어서 스타일을 서로 잘 안다. 그런데 창수형이 요즘 부산에 있을 때보다 몸 상태가 떨어진 것 같다. 자신있게 돌파해보겠다"(임상협), "오르샤와 이종호가 발이 잘맞더라. 공격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조합이다. 우리 수비수들이 훈련하면서 칼을 갈고 있더라"(이정협)며 상대를 슬쩍 자극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우리 김창수는 출전 못한 지 한참 지나서 칼을 갈고 있다. 경기만 뛰게 해달라고 안달이다"며 응수해 폭소를 유발하기도 했다. 김창수는 K리그 클래식 3경기를 남겨두고 비신사적인 반칙에 따른 징계로 4경기 출전정지 중이었다. FA컵에서는 리그 징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이정협의 공격을 막아야 하는 수비수 강민수는 "영업상 비밀이라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군 복무 시절 가깝게 지냈고 작년 이정협의 울산 임대 당시 함께 뛰었기에 스타일을 잘 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정협에게 패스가 연결되는 순간 어떻게 대응할지 신경을 집중하겠다"고 경계했다.
이에 이정협은 "민수형과 군대에서도 친했고 나에 대해 잘 안다. 하지만 반대로 머리를 써서 민수형을 최대한 뚫어볼 생각이다. 물론 경험이 많아서 쉽게 뚫리지 않겠지만 공격수로서 최선을 쏟아붓는다"고 응수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의 절실함에 대해서는 감독-선수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일단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기세를 몰아 내년 ACL에서 아시아 명문 클럽과 당당하게 겨루며 소중한 경험을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