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박찬준 기자]벤투의 축구를 믿어도 될까.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5일(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2019년 UAE아시안컵 8강전에서 0대1로 패했다. 후반 중거리슛 하나로 무너졌다. 벤투 감독이 부임한 후 첫 번째 패배였다. 59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한 벤투호는 우승은 커녕 15년만의 아시안컵 4강 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기대는 어느때보다 컸다. 지난해 8월 부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은 빠르게 연착륙했다. 9월 코스타리카, 칠레와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문을 연 벤투호는 벤투식 지배하는 축구가 빠르게 뿌리내리며 호평을 받았다. 11월 호주 원정 평가전까지 6번의 경기(3승3무)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역시 초반 무패행진을 이어갔지만, 약체 위주의 경기였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과 달리, 벤투호는 강호 우루과이, 칠레에게도 패하지 않았다.
당연히 59년만의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정작 본고사에 들어서자 너무 무기력했다. 물론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았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선수들의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대회 개막 후에는 '중원의 핵' 기성용(뉴캐슬)마저 낙마했다. 벤투 감독이 구상한 멤버로 단 한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컸다. 벤투 감독은 매경기 전후 기자회견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의 축구를 유지하겠다.", "오늘도 우리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지배하고, 컨트롤하려고 했다." 벤투식 축구의 핵심은 볼을 지배하고, 컨트롤 하는 축구다. 점유율을 높여 득점 기회를 최대한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후방부터 빌드업에 나서고, 짧은 패스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점유는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필리핀과의 1차전에서 무려 82%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키르기스스탄전 71%, 중국전 61%의 점유율을 보였다. 바레인과의 16강전에서도 70%,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도 6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점유율이 기회 창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단 6골에 그쳤다. 내용을 보면 더 아쉽다. 매 경기 15개 이상의 슈팅수를 기록한 것에 비해 유효슈팅수는 현저히 떨어진다. 바레인전에서는 아예 슈팅수 16대17, 유효슈팅수 2대4로 밀렸다.
아시아권 팀들과의 경기에서는 당연히 점유에서 한국이 앞설 수 밖에 없다. 한국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맞불을 놓는 팀은 없다.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점유율은 항상 높았다. 우리가 벤투 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하지 못했던 점유 후 어떻게 플레이를 만들어갈지 여부였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슈틸리케 시절 점유가 뒤에서 주로 이루어졌다면, 벤투호는 그래도 앞쪽에서 플레이가 이루어졌다. 보다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매번 이어지는 패턴은 같았다. 측면으로 볼이 가는 속도 차이에 따라 찬스 유무가 갈렸을 뿐, 중앙에서 측면으로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과정은 그대로였다.
일단 벤투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점유에 비해 찬스가 부족했다는 질문에 "효율적인 축구를 하지 못했다고 하면 동의하겠지만,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다는데에는 동의못한다. 향후에도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하고, 바꾸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벤투식 축구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이청용(보훔)은 "완전히 내려선 팀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최대한 공을 가지고 지쳤을때 노리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감독님의 전술에 만족한다. 당연히 점유율이 높은 팀이 유리하다"고 했다. 은퇴의사를 밝힌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도 "벤투식 철학이 선수들과 잘 맞는다"고 했다.
결국 벤투 감독은 마무리까지 만들기 위한 세밀한 플레이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점유가 아니라 득점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향후 벤투호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vanbasten@sportschosun.com